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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런: 라일요거/긴 썰

[라일요거] 어린 날의 그 애에게

by 솨리 2024. 4. 27.

 

 

시골에 사는 어린이 라일락... 시골 동네라서 어린 아이들이 별로 없었던 터라 거의 혼자 노는 게 일상이었음. 부모님은 논이니 농사일하러 나가시고, 라일락은 집이며 근처 개울이며 나가서 혼자 이것저것 가지고 노는 것이 전부인...
 
학교라도 가는 때엔 덜 심심한데, 여름 방학이 되면 더 심심했지.
 
여느 때와 다름 없이 혼자 놀던 여름방학의 어느날... 라일락은 개울가에서 처음보는 아이 하나를 만나게 됨. 연보랏빛 머리를 단발보다 조금 더 기른 아이였음. 라일락이 보기엔 여자아이 같았음. 얼굴도 예쁘장하고, 머리카락이 길었으니까ㅋㅋㅋ
 
아무튼 요 시골 동네에선 처음보는 아이였는데, 옷 입은 것도 말씨도 전부 도시에서 온 아이 같았단 말이지. 늘 혼자 물놀이를 하고 작은 물고기를 잡으려고 애쓰던 개울가에 다른 누군가가, 그것도 또래 아이가 나와 있는 것이 어색해서 라일락은 쭈뼛거리며 섣불리 그 아이에게 다가가지 못했음.
 
그랬더니 그쪽에서 먼저 라일락을 알아보고, "얘, 너 이 동네 사는 애니?" 하고 묻는데, 라일락이 얼결에 고개를 끄덕끄덕 하니깐 대뜸 "잘 됐다. 어린애가 나 혼자인 줄 알았어." 하고는 쫑알쫑알 아무 얘기나 하면서 같이 놀자는 것임. 라일락은 오늘 처음 만난 모르는 애랑 놀아도 되나 싶었지만, 애들은 애들인지라 곧 둘이 어울려서 작은 개울가에서 재미나게 놀았음.
 
그러다 여름 해가 서쪽 산 너머로 뉘엿뉘엿 질 때 즈음에서야 라일락은 이제 곧 부모님이 일을 마치고 돌아오실 때가 되어서 집에 가겠다고 했고, 그 애는 자기도 누가 데리러 왔다며 "내일 또 같이 놀자!" 인사하고는 큰 길가로 뽀르르 달려갔단 말이지. 그리고는 이 동네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크고 번쩍거리는 검은 차를 타고 사라졌음. 라일락은 그 애가 타고 사라진 검은 차의 뒤꽁무니를 한참동안 쳐다보고 있다가, 저 멀리서 부모님이 집에 가자 부르는 소리를 듣고 집으로 갔지.
 
그날 부모님과 저녁을 먹으면서도, 찬물로 샤워를 하고 자려고 누워서도 낮에 만난 그 애와 같이 놀았던 것이 잊혀지질 않아서, 혹시 꿈은 아니었을까 생각했던 라일락...
 
다음날 라일락은 아침을 먹고 숙제는 대충 해 놓은 뒤에 어제 그 개울가로 나갔고, 거기엔 또다시 연보랏빛 단발머리의 그 애가 나와서는 "오늘도 같이 놀자!" 하는 것이었음.
둘은 그날 하루도 재미있게 놀았음. 해가 서산 너머로 슬그머니 가라앉을 때까지 하루종일.
 
그렇게 몇날며칠을, 이름도 모르는 아이랑 어울려서 재미나게 놀고 보니 어느새 여름 방학이 훌훌 지나가서, 다음주면 벌써 개학이란 말이야. 라일락은 혹시 그 애가 자기가 다니는 학교에도 오는 걸까 조금 기대를 했단 말이지.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 애한테 이름을 물어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음. 자기 이름을 가르쳐 준 적도 없고. 어차피 둘 밖에 없으니까 그냥 편하게 "야!" 라고 부르는 게 전부였단 말이야. 라일락은 내일은 그 애를 만나면 이름을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잠이 들었지.
 
그런데 다음날, 개울가에는 그 애가 오지 않았음. 라일락은 작은 고기를 잡으려고 가져온 구멍이 성긴 뜰채를 물 위에 휘휘 저으며 하루종일 그 애를 기다렸지만, 헤어질 시간이 다 되어서도 그 애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음... 괜히 서운해진 라일락은 터덜거리며 집으로 돌아왔고, 내일은 그래도 걔를 만날 수 있겠지 기대했다만...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그 애는 개울가에 나오지 않았음.
 
그러다 결국 여름 방학이 끝났고, 혹시나 하는 마음을 안고 등교한 라일락은 더더욱 실망하고 말았지. 그 애는 라일락이 다니는 학교에도 오지 않았으니까.
 
어디서 왔는지도, 이름도 모르는 그 애에 관해 부모님께 물어봐도, 부모님도 잘 모르시는 것 같았음...
라일락은 이 여름 방학의 일이 그저 한때 지나가는 추억인가보다 생각했지.
읍내 시장에서 우연찮게 그 애에 관한 이야기를 엿듣기 전까지는.
 
부모님을 따라 읍내 시장에 나간 라일락은, 부모님이 물건을 사는 사이에 그 옆에 선 아주머니들이 수군대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음. 그 대단한 부잣집이 어쩌고, 산 속에 대저택이 있는데 저쩌고... 근데 그 집에 작은 애가 있지 않았냐며, 듣기로는 그 애가 정실 부인 자식이 아니라더라, 몸이 약해서 요양을 왔다던데, 갑자기 건강이 나빠져서 한바탕 난리를 치렀다던데 어찌되었냐, 구급차가 와서 애를 싣고 간 뒤로는 잘 모르겠다...
 
라일락은 어렴풋이, 이 아주머니들이 얘기하는 애가 자기가 만난 그 애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그 애가 병원에 실려간 뒤로는 소식이 없다는 말에 조용히 고개를 떨구고 말았지.
이름을 조금 더 빨리 물어볼 걸.
내가 먼저 내 이름을 가르쳐 줄 걸.
라일락은 작은 손을 꼼질거리며 후회했지만, 더는 그 애에 관한 소식을 들을 수 없는 서글픈 사실만이 남았을 뿐이었음...
 
그 뒤로 라일락은 공부를 꽤 열심히 해서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덕분에 도시에 있는 좋은 학교에 특별 전형으로 진학할 수 있게 되었음. 라일락은 부모님을 따라 농사일을 배우고도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어린 시절에 만났던 그 애가 온 도시 또한 궁금했기 때문에...
 
부모님도 아들의 대학 진학을 적극적으로 찬성해 주셨고, 라일락은 홀로 도시로 나와 대학에 다니게 됐지. 모든 것이 새롭고 어색했지만, 그럼에도 시골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어 라일락은 꽤 즐겁게 학교를 다녔는데...
어느날 우연히, 기억 속의 그 애와 너무나도 닮은 머리카락을 마주침.
 
연보랏빛 긴 머리카락... 물론 기억 속의 그 애는 조금 긴 단발머리 정도였지만, 만약 그 애가 계속 머리를 길렀다면 저만큼 길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비슷한... 라일락은 홀린듯이 그 사람을 돌아봤고, 그는 라일락의 시선을 알아채지 못하고 그저 그쪽 친구들과 왁자지껄하게 웃으며 지나갔음.
 
기숙사에 돌아오고서도 낮에 본 그 사람이 잊혀지지 않아 밤을 거의 새다시피 뒤척거린 라일락은, 하마터면 강의 시간에 늦을 뻔 해서 부랴부랴 강의실에 들어왔는데...
급히 아무 자리나 앉고 보니, 우연찮게도 어제 본 그 사람의 옆자리에 앉게 된 것임.
 
옆자리에 앉은 사람을 알아보고 라일락은 눈을 휘둥그레 떴지만, 그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듯 했음.
강의를 듣는 내내 라일락은 그가 신경이 쓰여서 곁눈질로 계속 훔쳐봤지. 이런 행동이 굉장한 실례인 걸 알면서도... 하지만 자꾸만 눈길이 가는 걸...
 
얼핏 봐서는 머리가 긴 여자 같았지만, 그는 남자였음. 그는 이따금씩 긴 머리를 쓸어넘기며 지루한 강의를 멍하니 쳐다보다가, 핸드폰을 들여다 보기도 하고, 턱을 괸 채로 졸기도 했는데... 라일락은 그를 흘끗거리느라 강의도 제대로 듣지 않고 있다가, 교수가 강의를 끝냄과 동시에 그 남자가 벌떡 일어나서 그제야 정신을 차렸단 말이지. 그리고 두 시간 내내 자기가 뭘 하고 있었는지 깨닫고, 부끄러운 나머지 조용히 짐을 챙겨 강의실을 나가려고 했는데...
 
"이봐요." 누군가가 자길 부르는 소리를 듣고 발걸음을 멈춘 라일락의 뒤에는 그 남자가 서 있었음.
"강의 시간 내내 남의 얼굴은 왜 쳐다봐요? 내 얼굴에 뭐 묻었어요?" 팔짱을 낀 채 서서 라일락을 바라보며 남자가 묻는 말에 라일락은 수치심이 몰려와 얼굴이 화끈거렸음ㅋㅋㅋ; "아니..., 그... 미안합니다." 라일락은 얼른 고개를 숙여 사과를 했고, 남자는 영 미심쩍은 얼굴로 라일락을 훑어보고는 싱겁기는, 별거 아니네 하는 표정으로 "다음부턴 그러지 마세요." 하며 라일락을 지나쳐서 강의실을 나감.
 
라일락은 뻘쭘하고 민망한 기분으로 강의실을 나왔지... 그리고 터덜거리며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학생 식당으로 향하는데, 저 멀리서도 눈에 띄는 연보랏빛 긴 머리카락... 또다시 그쪽으로 시선이 가서, 라일락은 저 스스로도 내가 미치기라도 한 건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음ㅋㅋㅋ
 
그런데 그 남자와 말이지, 그 강의만 같이 듣는 것이 아니라 다른 교양 강의도 같이 듣게 되었단 말이야. 거기서도 라일락은 그 남자를 쳐다보았고, 그러다 남자와 눈이 마주치자 라일락은 황급히 고개를 돌렸지만 아무래도 그쪽에서 이 시선을 눈치챈 것 같지; 라일락은 속으로 머리를 쥐어 뜯음ㅋ
 
"이봐요, 당신 뭐하는 사람이에요?" 강의가 끝나자마자 득달같이 와서는 라일락을 붙잡은 남자... 쥐도새도 모르게 강의실을 빠져나가려던 라일락은 남자에게 붙잡혔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흘깃대며 저기 무슨 일 있대? 수군대는 소리가 들리는데... 라일락은 이건 진짜 뭐됐다 생각하며 일단 사과부터 함ㅋㅋㅋㅋ 그러나 남자는 "지난번에도 똑같은 소릴 하더니." 하며 더욱 미심쩍은 얼굴로 라일락을 쳐다봄... 그에 라일락은 더더욱 할 말이 없어서 말 그대로 쥐구멍에 숨고만 싶었는데, 아무래도 남자가 쉽게 놔줄 거 같지 않단 말이야; 근데 진짜 특별한 이유가 없잖아??
 
대뜸 당신이 내 어린 시절에 만난 어떤 여자애랑 닮아서 자꾸 시선이 간다고 말할 수도 없고... 지금 상황에 이 얘길 했다간 더욱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을 거 같아서, 라일락은 생각나는 대로 아무 말이나 했음. "그, 당신이랑 친해지고 싶어서요."
 
그 말에 남자는 표정이 싹 바뀌었는데... 라일락이 느끼기엔 오히려 더 싸늘한 표정이었음...
"아 그래요?" 방금 전보다 훨씬 더 냉랭해진 남자의 시선과 말투에 라일락은 더욱 더 망했다 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지...
 
"미안한데 지금은 내가 좀 바빠서. 나중에 보죠."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 강의실을 나갔는데, 그 주변으로 다른 학생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무언가 수군거리는 것이...
 
며칠 뒤에서야 라일락은 그 남자가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재벌가의 3세인 요거트크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됨...
이러니 보잘 것 없는 시골에서 올라온 유학생인 그를 얼마나 같잖게 보았을까!
요거트 입장에서는 라일락이 별 볼일 없는 출신이라고 생각할테고, 뭔가 내세울 것도 없는 주제에 대뜸 "당신과 친해지고 싶다" 는 말이 어이 없었겠지.
 
근데 말은 그렇게 했어도 라일락은 그와 친해지려는 건 아니었거든ㅋㅋㅋ
그가 신경 쓰인 건 그저... 어린 시절의 그 애가 생각나서 그런 거니까.
 
거기에 둘은 운이 좋은건지 나쁜건지, 같이 조별과제를 하게 되었음. 라일락은 좀 껄끄럽기는 해도 일단 과제가 있으니 그래도 열심히 해야겠다 싶어서 나름 최선을 다 했단 말이야.
요거트는 그런 라일락이 조금 신기한 듯 했음. 당신과 친해지고 싶다고 말해놓고는? 별다른 행동도 없이 그냥 과제만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사실 라일락은 여전히 요거트가 신경이 쓰였음ㅋㅋㅋ 근데 이전처럼 그렇게 실례가 되는 행동을 또 했다가는 이번엔 진짜 이상한 소문이 날 거 같아서 몸을 사린 거지ㅋㅋㅋ 괜히 스토커라는 소문 같은 게 나면 큰일이잖음;;
 
그러다가... 날은 우연히도 다른 조원들이 급한 일이 있어 일찍 가버린 날이었음.
요거트랑 마주앉아 조용히 자료를 찾고 있자니 앉은 자리가 가시방석이라 나도 대충 끝내고 가야겠다 생각한 라일락...
근데 요거트가 갑자기 "... 밥이나 먹을래요?" 하는 거.
 
너무 예상치 못한 제안이라 라일락은 정중히 거절하려고 그랬는데, 요거트가 자기 대답을 기다리면서 빤히 쳐다보고 있으니까... 얼결에 그러자고 했지 뭐. 그래서 둘은 자료 정리하던 걸 대충 마무리 짓고, 어색한 거리를 유지하며 저녁을 먹으러 감... ㅋㅋㅋ
 
식사 자리에서도 어색한 건 마찬가지였음ㅋㅋㅋㅋ
그러다 문득 요거트가 말했음. "당신 참 이상한 사람이네요." 하고.
라일락은 이건 무슨 의미일까 싶기도 하고, 또 뭐라 대답할 말도 없어서 그냥 요거트를 쳐다만 봄.
"나랑 친해지고 싶다더니 뭐 하는 것도 없고. 멀리서 쳐다보기만 하는 게 취미예요?" 요거트가 묻자, 라일락은 머쓱하니 대답을 못 하고 있다가 한참 뒤에 입을 열었음. "... 그냥... 그러면 너무 부담스러울까봐..." 누가 보면 쑥스러워서 하는 소리 같겠지만, 라일락으로서는 정말 할 말이 없어서 한 소리임ㅋㅋㅋ
아무리 당사자가 먼저 물어봤다지만, 당신이 내 어린 시절의 어떤 여자애랑 닮았다고 말할 수는 없으니까ㅋㅋㅋ;
 
거기에 요거트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음. 그렇지... 어이 없겠지... 라일락은 도대체 이런 바보 같은 상황이 왜 벌어지는 거냐고 생각하는 중이었는데...
"웃기네. 그럼 그쪽에서는 나랑 친해지려는 노력은 딱히 하지 않겠다?
그럼 이쪽에서 친해지자고 하면 할거예요?" 요거트가 말했지.
 
응? 이건 또 무슨 소리지. 라일락은 정신이 번쩍 드는 듯한 기분으로 요거트를 쳐다봤고, 요거트는 라일락과 눈이 마주치자 씩 웃었음.
"내가 먼저 들이대려고요. 나도 그쪽이 조금 신경 쓰이거든요."
아.
라일락은 이전과는 다른 의미로 뭐됐다고 생각함ㅋㅋㅋ
ㅋㅋㅋㅋㅋ
 

 

 
 
 
뒷이야기를 더 생각하긴 했는데
쓰다가 흐름이 끊겨서 그냥 냅뒀더니 영영 안 이어서 쓰게 되는...ㅋㅋㅋㅋ
나중에라도 이어서 쓰게 되면 덧붙여 두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