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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런: 라일요거/긴 썰

[라일요거] 반란군과 납치 당한 왕자

by 솨리 2022. 11. 17.

 
 
요구르카는 사막의 꽃처럼 풍요롭고 아름다운 나라임. 그러나 그건 겉보기에 그런 것이고, 실상은 빈부격차가 굉장히 심하고 신분 차별도 극심한 나라... 왕족과 귀족은 수도에 살며 다시 없을 부를 누리지만, 평민의 삶은 가난하고 궁핍하고, 천민의 삶은 인간의 것이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든 사회였음.

이 나라의 현 왕은 요구르카에 막대한 부를 가져온 성군으로 추앙받는 인물이지만, 이제는 나이가 많이 들고 노쇠하여 첫째 왕자인 플레인 요거트와 가신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겨우 국정을 운영하고 있음. 그러다보니 나라의 부가 조금씩 그들에 의해 축나고 있는 실정이지만, 나이가 들어 총명이 빛을 잃은 왕은 그걸 모르고 있는 중임...

그러다 나라 전체에 극심한 가뭄이 들어 농사가 완전히 망한 해가 있었음. 평민들은 당장 굶어죽게 생겼으니 관개 수로를 개방하고 구휼미를 풀라고 요구했으나, 왕실을 장악한 간신들은 왕의 귀를 막았고, 빈민 구제는커녕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고 반항하는 이들은 감옥에 가두거나 패죽이는 일이 빈번하게 생겼단 말이야... 엎친에 덮친격으로 다음해에도, 그 다음해에도 비가 많이 내리지 않아 대지는 농작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고, 황폐해진 땅은 급기야 사막이 되어가고 더는 사람이 살 수 없어, 수도 외곽 지역에서는 사람들이 고향을 버리고 떠날 지경이었음.

이러니 당연히 왕실과 귀족들에 반발심을 가진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었지. 뜻이 있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지하 조직이 만들어졌고, 이들은 어떻게하면 부패한 왕실과 귀족을 몰아내고 요구르카를 구해낼 것인지 모의함. 그리고 그 일환으로 그들이 짠 작전은 바로 제 2왕자인 요거트크림을 납치하여 협상의 빌미로 삼자는 것이었음.

제 2왕자 요거트크림은 현 왕이 가장 사랑하는 첩의 소생으로 어렸을 때부터 왕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난 탓에 안하무인에 오만방자하다고 알려진 인물임. 워낙 어렸을 때부터 풍족한 환경에서 자라 성인이 된 지금도 과한 소비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흥청망청 국고를 낭비하고 있고, 현재 요구르카의 실정에는 눈이 어두워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르는 상황...

그런데도 나이 든 왕은 제 1왕자인 플레인 요거트보다도 2왕자인 요거트크림을 사랑하여, 아직도 후계자를 정하지 못하고 갈등하는 중임. 1왕자가 똑똑하고 유능한 것을 알지만, 사랑하는 아들은 2왕자이므로 사실은 2왕자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싶은 마음이 컸지. 귀족들은 플레인이 왕이 되면 자기 측근을 제외한 반대파를 모조리 숙청할 걸 알아서, 차라리 멍청한 요거트크림을 왕으로 세우고 좌지우지할 심산으로 나이 든 왕에게 2왕자를 후계자로 삼으라고 꼬드기는 중이었음.

이런 실정을 파악한 반란군 측은 2왕자 요거트크림을 납치한 뒤에 협상의 빌미로 삼자고 작전을 짰지. 마침 요거트크림은 지금 이웃 나라에 관광을 갔다가 돌아올 예정이라, 그 루트를 급습하여 왕자를 납치한 뒤에 왕실에 협박 편지를 보내기로 함.

작전은 꽤 순조롭게 진행되었음. 척박한 사막의 절벽 사이를 통과하는 왕자 일행을 습격한 반란군... 물론 왕자 일행은 호위대가 겹겹이 둘러싸고 있었으나, 지형이 불리하여 반란군의 습격을 막지 못했음. 반란군은 생각보다 쉽게 2왕자 요거트크림을 수중에 넣었으나... 문제는 퇴각하는 과정에서 인근 도시의 지원군을 맞닥뜨리는 바람에 불리한 상황에 처하게 됨. 크게 부상을 당했으나 왕실 호위대는 호위대인지라 악착같이 쫓아온 그들은 지원군과 합세하여 반란군을 몰아붙였고, 반란군은 불리한 전황에 쫓기다가 낭떠러지까지 몰리게 되었지. 그러다 엎치락 뒤치락 하는 과정에서 왕자와 그를 데리고 있던 반란군 하나가 함께 절벽에서 추락하게 됨...

높은 절벽 위에서 떨어지려는 왕자를 붙잡으려다 그와 함께 추락해버린 반란군 소속의 암살자인 라일락... 떨어지는 것은 순식간이었고 온몸을 강타하는 충격에 잠시 정신을 잃었음. 그러다 한참 뒤에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켰지. 꽤 높은 곳에서 떨어졌으나 천만다행으로 크게 다친 곳은 없었음. 몸이 부서질듯이 아프기는 했지만... 정신을 차린 라일락은 급히 주변을 돌아보았지. 그랬더니 조금 떨어진 곳에... 역시 기절한 왕자가 쓰러져 있었음. 혹시 죽은 건가 싶어 다가간 라일락은, 왕자가 부상을 좀 당하긴 했지만 목숨은 붙어있는 것을 확인했지.

근처에 작은 시내가 흐르고 있어 라일락은 우선 자기 목부터 좀 축인 뒤에, 손으로 물을 받아 왕자의 얼굴에 뿌렸음. 차가운 물을 맞은 왕자는 끙끙대는 소리를 내더니 부스스 눈을 떴지. "으... 아파..." 겨우 눈을 뜬 요거트크림은 온몸이 너무 아프고 쑤셔서 도저히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가, 눈만 떠서 주변을 살펴보니... 호위대나 시종이 아닌 처음보는 시커먼 남자 하나가 자기를 내려다 보고 있기에 소스라치게 놀랐지. "다, 당신 누구야!!!" 요거트는 꽥 비명을 지르며 몸을 벌떡 일으켰지만 곧 끄으응 소리를 내며 다시 바닥에 쓰러졌음.

"당신 대체 누구야!? 나를 습격한 그놈들 중 하나지!!??" 바닥에 쓰러진 상태여도 요거트는 바락바락 화를 내며 외쳤지. 저렇게 소리 칠 기운이 있다니 다행이군 싶어서, 라일락은 그에게 다가가 눈으로 대충 그를 살펴보았음. 이쪽도 눈으로 보기엔 크게 다치진 않은 것 같다만... 입은 살아서 계속 라일락에게 너는 뭐하는 놈이냐, 대체 무슨 목적으로 나를 습격했느냐, 나를 이렇게 만들었으니 네놈들은 다 죽은 목숨이다, 왕실에서 가만히 있을 줄 아느냐 꽥꽥거리는데... 라일락은 차라리 깨우지 말고 기절한 채 들고 가는게 나았겠다 싶어 한숨을 내쉬었음. "어쭈!? 지금 내 앞에서 네놈이 한숨을 쉬어?? 어?? 당장 나를 일으켜서 원래 있던 곳에 데려다 놓아야 할 거 아니야!!" 요거트가 끙끙대며 상체만 일으킨 채로 삿대질을 해 대는데, 그쯤되니 짜증이 치민 라일락은 요거트의 멱살을 붙잡았지.

"???!!!!" 갑자기 라일락에게 멱살을 붙잡힌 요거트는 식겁하여 눈을 크게 뜨고 그를 쳐다봄; 라일락은 요거트의 눈을 똑바로 노려보며 "여기서 죽고 싶지 않다면 입 다물어." 라고 말했지. 요거트는 크게 딸꾹질 하듯 숨을 삼키고 얼굴을 파리하게 굳힘. "여, 역시 나를 죽일 셈이었던 거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 요거트에게, 라일락은 잡았던 멱살을 놓아버리고 몸을 일으켰지. "나를 죽일 셈이었냐고 묻고 있잖아, 이 나쁜 놈아!!" 요거트가 그의 뒤에 대고 소리를 질러댔지만, 라일락은 무시하고 그들이 떨어진 자리 주변부터 살펴봄. 혹시 절벽을 타고 올라갈 수 있을까 하여...

그러나 깎아지른듯한 절벽엔 붙잡고 올라갈만한 지형 지물이 전혀 없었음. 혼자였다면 어떻게든 시도는 해봤겠지만, 지금은 매우 비협조적일게 틀림없는 왕자까지 있는 꼴인지라... 라일락은 높은 절벽을 올려다보고 깊은 한숨을 내쉰 뒤에, 이번엔 절벽 바닥을 따라 흐르는 조그만 시내를 따라 시선을 옮겼지. 어딘가에서 흘러 어딘가로 향하는 물길... 제대로 흐르고 있다면, 물길을 따라 걸으면 분명 큰 강에 닿을 것이고... 강에 닿기만 하면 근방에 마을이 있을테니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임. 라일락은 시냇물을 따라 걸어 내려가기로 했지.

"젠... 장! 다리가 너무 아파서 움직일 수가 없잖아!!" 요거트는 일어서고 싶었던 모양이지만, 딱 봐도 다리를 다쳐서 일어나지 못하는 듯 하지. 마음 같아서는 부상당한 사람은 거추장스럽기만 하니 버리고 가고 싶지만, 왕자를 납치하는 게 원 목적이었으니 버리고 갈 순 없어... 라일락은 혀를 차고 요거트를 부축하기 위해 그에게 다가갔음. "내 몸에 손 대지 마!!" 그러나 요거트는 라일락의 손을 매몰차게 내쳐버렸지. "감히 내 몸에 더러운 손을 갖다 대려고 해!?" 있는대로 그에게 적의를 드러내며 노려보는 요거트를 내려다보며 라일락은 어쩔까 하다가, "그래, 그럼 여기서 굶어 죽든가." 하고 몸을 돌려 세웠음. 그리고 시냇물길을 따라 천천히 걷기 시작했지.

"야... 야!! 나 요구르카의 왕자거든!?!?!? 어떻게 네까짓게 감히 나를 버리고 그냥 가!?!? 어??? 너 진짜 죽고 싶어???!!!" 절벽 골짜기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큰 소리로 발악하는 요거트를 등지고선 라일락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 걸어감. "네, 네놈들 목적은 나 아냐!??! 나를 여기에 두고 가면 안 되는 거잖아!!!!" 라일락이 진짜 저를 버리고 가는 줄 알고 절박해진 요거트는 이제 거의 울기 일보 직전인 목소리로 절규하듯 외치는데... 결국 그 자리에 멈춰선 라일락은 뒤를 돌아 요거트를 돌아봤음. 요거트는 눈물까지 그렁그렁한 얼굴로 라일락을 쳐다보고 있었지. 라일락은 아까보다 더욱 깊은 한숨을 내쉬고 다시 요거트에게 돌아간 뒤에, 이를 악 물고 그를 부축해 일으켰음.

"윽... 아파..." 라일락의 부축을 받으며 겨우 일어났지만 아무래도 다리를 접지른 모양인지 요거트는 제대로 걷기 어려워 했음. 저 높은 절벽에서 떨어진 것 치고는 굉장히 경미한 부상이었지만 아무래도 걷는데에 차질이 있어 부축하고 있는 라일락도 힘이 들었지. 게다가 요거트는 라일락의 부축을 받으면서도 입으로는 연신 투덜투덜 거리는데, 그것이 매우 거슬린 라일락은 속으로 '작전만 아니었어도 당장 이 시끄러운 놈을 내다 버리는 건데' 하고 진지하게 생각함... 확 그냥 죽어버렸다고 하고 내버리고 갈까도 생각해보고ㅋㅋㅋ;

요거트가 걷기도 어려워하고 오래 걸을 수도 없는데다가, 절벽으로 둘러싸인 골짜기엔 어둠이 금세 내려앉는 바람에 그들은 얼마 걷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야 했음... 밤이 되자 무섭게 찾아드는 한기에 라일락은 모닥불부터 피워야겠다 싶어 시냇가 주변을 돌아 겨우 나뭇가지 몇개를 찾아냄... 그동안 요거트는 몸을 옹동그린채로 달달 떨기만 하는채로 잔소리를 해댔지. 한 나라의 왕자인 내가 이게 무슨 꼴이냐며... 라일락은 손에 쥔 나뭇가지로 저놈의 입을 찔러버릴까 했지만 꾸우욱 눌러 참았음.

젖은 나뭇가지에 불을 붙이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어서 불을 피우는데 한참 걸림... 겨우 자그마한 모닥불이 피워지자 라일락은 그 주변에 털썩 주저앉았고, 두꺼운 망토로 몸을 감싸고 잠을 청하려는데... 옆에 있는 요거트는 망토는커녕 얇은 비단으로 만든 옷만 걸치고 있어 제 몸을 감싼채 "추워!! 이러다 얼어 죽는다고!!" 하는 것이 아니겠음... 근데 망토는 하나뿐이고... 이걸 벗어주면 그 자신이 얼어죽을 지경이니, 어쩔 수 없이 시끄러운 왕자에게 망토 한쪽을 내주고 만 라일락...

왕자는 당연히 이걸 통째로 날 줘야하지 않냐며, 어떻게 납치범이랑 같은 망토를 덮고 밤을 보내냐며 항의했지만, 라일락이 눈으로 '그럼 넌 덮지 말고 얼어 죽든가' 하고 있었기 때문에... 매우 불퉁한 얼굴로 라일락과 한 망토를 덮고 앉았음ㅋㅋㅋ 망토가 크긴 하나 아무래도 성인 남성 둘이 덮기엔 역부족이라, 정말정말 어쩔 수 없이 바짝 붙어앉은 둘... 팔뚝살이 맞닿을 때 둘다 진저리를 쳤는데, 지금 여기서 가장 따뜻한 것은 상대방의 체온뿐인지라 그냥... 감내하기로 하였다... 그렇게 얼렁뚱땅 밤을 지새운 왕자와 라일락...

아무래도 불편한 잠자리여서 둘다 새벽 일찍 깨고 말았음. 모닥불은 진즉 다 타고 재만 남았고. 라일락은 다시 요거트를 부축해 시냇물을 따라 걷기 시작했지. 어제는 내내 불만스러운 소리를 해대던 요거트는 하루만에 체력이 쪽 빠져버린 모양인지, 오늘은 헥헥거리는 숨소리만 낼뿐 이렇다 할 말은 없었음. 그도 그럴것이 어제부터 물 빼고는 아무것도 먹질 못했으니... 요거트는 배가 고프다고 칭얼대는 소릴 했지만, 작은 시냇가에선 물고기 한 마리도 낚을 수 없어 먹을 것이 전혀 없는 상황이었지.

그렇게 사흘 내리 밤낮을 물만 먹고 (본의는 아니지만) 서로의 체온으로 견뎌가며 시냇물을 따라 걸어 내려온 둘... 대체 이 절벽 골짜기의 끝은 있는 걸까 싶을 정도로 가도가도 끝이 보이질 않는데, 설상가상으로 허기까지 져서 도저히 걷기가 어려운 상황이 됨. 시냇물의 물길은 넓어지긴 했지만 골짜기가 끝날 기미가 보이질 않는거. "나 이제 더는 못 걷겠어..." 충분히 쉬어야 나을 다리를 가지고 계속 걸은 탓에 더욱 빨리 지쳐버린 요거트가 그 자리에 무너지듯 주저앉았고, 라일락 또한 이제는 요거트를 부축할 기운도 없음... 너무 배가 고파서... 결국 둘은 절벽 바위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가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지.

그러다 어딘가에서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려 정신을 차린 라일락은 등에 딱딱한 침대의 감촉이 닿은 걸 알고 벌떡 일어났음. 마침 라일락 곁으로 조촐한 식사가 담김 쟁반을 들고 온 사람은 그가 깨어나자마자 깜짝 놀랐지. 라일락은 그를 붙잡고 여기가 어디냐 물었고, 그는 요구르카 외곽의 작은 시골 마을 이름을 댔음. 그래도 마을을 찾긴 찾았구나 싶어 라일락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 알고보니 이 마을은 절벽 골짜기에서 나오는 작은 강물을 오아시스 삼아 만들어진 소규모 마을이었던 것임.

남자가 준 묽은 죽을 먹고 기운을 좀 차린 라일락은 혹시 자기랑 같이 있던 남자 하나는 어떻게 되었느냐 물었지. 음식을 준 사람은 그 남자라면 옆방에 있다고 알려주었음. 그리고 라일락이 깨어나기 얼마 전에 먼저 정신을 차려서는, 배가 고프다, 다리가 아프다 하며 사람들을 시종처럼 부려먹고 있다고 했음. 라일락은 혀를 쯧 차고 자리에서 일어나 옆방으로 갔음. 아니나 다를까 요거트는 낡은 침대에 편히 누워서, 곁에 앉은 여자가 떠먹여 주는 죽을 받아먹고 있지 뭐야... 라일락은 그 꼴을 한심한 눈으로 쳐다봤지.

"어이, 이제 일어났냐, 납치범?" 라일락을 보자마자 요거트가 비아냥대듯 말을 걸었음. "덕분에 죽을뻔했다? 그래도 이 사람들이 날 구해줬다고. 너까지 구한 건 유감이지만, 어쨌든 마을에 왔으니 왕실 군대에 지원 요청도 할 수 있겠지? 넌 이제 죽은 목숨이다 이거야!" 요거트는 매우 자신만만하게 말했지만... 요거트에게 죽을 떠먹여 주는 여자도 그렇고, 라일락을 도와준 남자도 그렇고 영 불편한 눈치임. 왜 그랬냐면...

"뭐!? 왕실 군대를 불러올 수 없다고!? 왜!???" 요거트가 뜨악하며 외쳤지만 남자는 굳은 얼굴로 한사코 고개를 가로저었음. 여기는 요구르카 왕국에 속한 곳은 맞지만, 이미 왕국의 손길이 닿지 않은지 한참이나 된 지역이라는 거... 심지어 원래 다른 마을에서 살던 사람들이, 원래 살던 곳에서 살기가 너무 어려워져서 고향을 떠나서 만든 마을이라고 했지.

"왕국의 가호를 받지 못하는 곳이 있다니 그게 말이 돼!? 여기 사실은 요구르카가 아닌 거 아냐!?" 요거트가 말도 안된다고 외쳤지만 누가 봐도 그들은 요구르카의 언어를 사용하고 복식을 입은 사람들이었기에... 요거트는 기가 찬듯 그럴 리가 없다고 현실을 계속 부정했지만 라일락은 그들의 사정을 이해할 수 있었음. 수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도시들 사정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거나 이보다 더 열악하니까... 늘 왕궁에 처박혀 흥청망청 먹고 놀았을 왕자는 전혀 모를 사정이지.

그럼 수도로 가는 마차는 없냐는 요거트의 말에, 부부는 여기는 낙타 한 마리도 구하기 어려운 곳이라고 대답함... 요거트는 절망했고, 라일락은 온전히 도보로만 움직여서 사막을 건너가야 함에 조금 걱정이 됐지. 하루라도 빨리 반란군 근거지로 돌아가서 작전대로 움직여야 할텐데 벌써 며칠이나 지체된 것인지...

라일락은 그들을 구해준 부부에게 감사를 전하고, 수도로 향하는 방향은 어디인지 물은 뒤에 다음 마을로 떠날 채비를 함. 다행히 수도 방향으로 가는 길에 작은 오아시스가 있고 거기에 마을이 있을 거라는 얘기를 들어, 그날 당장 떠나기로 했지. 물론 작전의 핵심인 요거트를 데리고. 그러나 요거트는 자기는 다리가 다 낫지도 않았고, 맨몸으로는 죽어도 사막을 걸어서 갈 수 없다며 억지를 부리는데... 라일락은 냉정하게 "그럼 여기서 평생 있든가. 왕실 군대도 오지 않는 곳에 누가 널 찾으러 오겠어?" 하고 잘라 말했음. 요거트는 매우 분한 얼굴로 화를 내려고 했지만 라일락의 말이 옳았음... 이정도 변두리에 왕자가 있다는 걸 누가 알겠어...

결국 요거트는 울며 겨자먹기로 라일락을 따라 나서기로 했지. 부부는 자기들도 먹을 것이 없지만 사막을 건너기로 한 둘에게 약간의 식량과 물을 나눠주고, 요거트에게는 낡은 망토까지 하나 내어준 뒤에, 가장 가까운 마을로 가는 정확한 길을 알려주었음. 라일락은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다고 깊은 감사를 전한 뒤에, 부루퉁한 얼굴인 요거트를 데리고 길을 떠났지.

가장 가까운 오아시스라고 들었건만 거기까지 도착하는 데엔 이틀이 꼬박 걸렸음. 다행히 정확한 길을 알고 있고, 물과 식량이 있어 걸을만 한 길이었다만... 그래도 사막의 땡볕과 이따금 불어오는 거센 모래바람을 헤치고 나아가는 건 쉬운 길이 아니었지. 녹록치 않은 길을 따라 걸으며 요거트는 자기가 이런 험한 꼴을 당하는 데에 굉장한 원한이 쌓인듯 했음. 그 마을에 도착하기만 하면 당장 왕실 군대를 부르겠다고 이를 가는 중이었지.

그러나 겨우 도착한 오아시스 마을 또한 이전 마을과 크게 다를바 없는 변두리의 작은 시골 마을인지라... 여기도 당연히 왕실 군대가 파견될 리가 없는 곳이었음. 그래도 절벽 아래 마을보다 약간 나은 점은 한달에 한번꼴로 수도에서 오는 상단이 지나간다는 점 뿐인... "요구르카에 이렇게 가난한 마을이 여러 곳일 리가 없잖아!!" 요거트는 분통을 터뜨리며 절망했지만, 이것이 현실인 것을... 라일락은 좌절하는 요거트를 내려다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음. 대신 수도에서 오는 상단이 언제 지나가는지 물었지. 마을 사람은 이미 얼마전에 그들이 다녀갔다고 하며, 수도에서 오는 물자가 이전보다 더 줄어있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걱정스러운 소리를 했음. 라일락은 내심 요거트가 이런 이야기를 좀 들었으면 했지만... 요거트는 왕실 군대가 오지 못한다는 말에 풀이 죽어선 아무 말도 안 들리는 거 같지.

상단에 의지하여 이동하면 좋았겠지만 이미 지나갔다고 하니 방법이 없어, 또다시 수도로 가는 방향을 물은 뒤에 도보로 이동하기로 결정한 라일락... 가는 길에 운이 좋아 반란군 세력을 만나면 좋을테지만, 요구르카는 작은 왕국이 아니었기에 사실상 좀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지. 그래도 다행인건 이 마을엔 전서구가 있어서, 라일락은 반란군에 서신을 보냈음. 왕자와 자신은 살아남았고, 지금 근거지를 향해 가는 중이라고... 이 서신이 언제 닿을지도 모르고 그들이 언제 근거지에 도착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마을에서 하루 묵은 뒤에 라일락은 약간의 식량과 물을 얻고, 수도로 향하는 길을 물어 다시 길을 떠남. 여전히 낙타도 말도 없이 걸어서 가야 하느냐고 입이 댓발 나온 왕자를 데리고 말이지. 처음 왕자를 습격했을 땐 부상은 좀 당했어도 귀티가 줄줄 흘렀던 왕자는 며칠 관리를 못 받은 탓인지 피부도 푸석푸석해지고 머릿결도 다 상해버렸다면서, 자기를 납치한 라일락을 아직도 원망하고 있었음ㅋㅋㅋ... 그가 자기를 납치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고생하지도 않았을 거라고 말이야!

그런데... 요거트는 아직도 라일락이 단순 납치범이라고만 생각하고 반란군인 것은 모르고 있음ㅋ... 자기를 납치한 것도 그저 돈을 뜯어내기 위함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 자기를 습격한 건 단순 납치범이나 도적떼 같은 소규모 일원이 아니라, 무언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나름 작전같은 것을 세운 일당같았단 말이야? 이쯤되어 라일락의 정체가 궁금해진 요거트는 그에게 대체 당신 정체가 뭐냐, 무슨 목적으로 나를 납치냐 꼬치꼬치 물었지. 그러나 라일락은 대답하지 않았음. 반란군 소속이라고 밝혔다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아무리 왕실 군대가 닿지 않는 곳이라지만 어디든 위험은 도사리고 있으므로...

어쨌든 둘은 이 마을 저 마을 건너다니며 척박한 사막을 거슬러 요구르카의 수도로 향하고 있는데... 들르는 마을마다 사정이 그리 좋지 못함. 처음엔 그저 수도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변두리이기에 가난한 곳이다 생각했던 것도, 수도랑 꽤 가까워진 것 같은데도 비슷한 사정이 계속 이어지니 좀 이상하다고 느낀 요거트크림... "... 요구르카에 이렇게 가난한 마을이 많았단 말이야...?" 그래도 나름 도시라고 부를만한 규모의 마을에 도착했으나 거기 풍경도 다른 마을과 크게 다를바 없어 요거트는 아연실색하고 말았지. 몇해에 걸쳐 든 가뭄에 도시는 말라 비틀어졌고, 거리엔 뜨거운 태양볕에 지친 몇몇 사람들과, 아무 것도 모르는 때가 꼬질꼬질한 어린아이 몇명이 천진난만하게 뛰어놀고 있을뿐...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도시를 둘러보는 요거트를, 라일락은 말없이 지켜보기만 하였음.

이 도시에서 다음 도시로 넘어가기 위한 채비를 하는 중에, 그들은 약간의 식량을 얻으려고 했으나... 이제까지 지나온 마을들에선 사막을 건너는 이 이름모를 여행자들에게 기꺼이 자비를 베풀었건만, 여기서는 돈을 내야 먹을 것을 준다고 하지 않겠음? 그러나 라일락은 물론이고 요거트조차도 돈을 한 푼도 가지고 있지 않았지. 결국 요거트는 자기가 가진 반지 하나를 내놓았는데, 그걸 받아든 상인은 식량을 내놓았지만 그 품질이 비루하기 짝이 없었음. "아니, 이게 얼마짜리 반지인 줄 알아!?" 요거트는 분통을 터뜨렸으나, 상인은 지금 우리 가게엔 이보다 더 좋은 걸 내놓을 수 있는 여유가 없다는 것임... 결국 정말 허접하기 짝이 없는 먹을거리를 비싼 반지를 주고 사버린 둘... 다른 상점도 사정은 마찬가지라 이것이 최선이었음. 요거트는 실망은 둘째치고 충격을 받아 말이 없었지.

그 마을에서 수도로 가는 루트는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좀 멀리 빙 돌아가는 길이었고, 다른 하나는 어떤 도시를 관통하여 지나가는 길이었음. 꽤 큰 도시여서 거기부터는 왕실 군대를 마주할 수 있었기에 라일락은 빙 돌아가는 길을 택하려고 했지만, 상인과의 대화를 귀신같이 주워들은 요거트가 당장 도시를 가로지르는 루트를 골라버려 어쩔 수 없었지. 요거트는 그 도시를 다스리는 지방관이나 상주하고 있는 군대를 만나면 라일락을 체포해 버릴 심산이었지만...

그 도시는 부패한 지방관이 왕실 군대와 결탁하여 세금을 쥐어짜고 있는 곳이었음. 당연히 주둔하고 있는 군대도 군대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껄렁한 양아치 수준이었지. 라일락은 도시에 발을 디디자마자 그 사실을 알았지만, 요거트는 눈치채지 못한 듯 했음. 라일락은 요거트를 끌고 "저들은 너를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손해다" 했지만, 요거트는 "납치범이 하는 말 따위는 믿을 수 없다"며, 라일락에게서 벗어나 거리를 순찰하는 군인들을 붙잡았음. 자기가 요구르카의 왕자고, 지금 납치를 당하여 고생하고 있다고 말이야.

그러나...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 도시의 군인들이 왕자 얼굴을 알 턱이 없었지. 다들 초라한 행색인 요거트의 꼴을 보고 큰소리로 웃어 제끼면서, 네까짓게 왕자라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비웃기만 하였음. 화가 난 요거트는 걸치고 있던 망토를 벗어 제끼고, 왕실 문양이 박힌 보석이 달린 반지를 보여주었는데... 다들 요거트크림이 왕자라는 사실보다는 그가 걸치고 있는 각종 귀중품에 눈이 멀어, "왕자인 건 모르겠고, 귀한 걸 많이 가지고 있구만?" 하며 오히려 그를 겁박하는 것이 아니겠음? 당황한 요거트는 뒷걸음질 치며 도망치려 했지만 긴 머리를 붙잡히고 말았고, 우악스런 손길이 옷을 벗기고 귀중품을 뜯어가려는 순간에 라일락이 나타났지.

라일락은 그들에게 조용히 요거트에게서 손을 떼라고 경고했으나, 당연히 양아치나 다름없는 군인들이 말을 들을 리가 없었고... 곧 그들은 라일락의 손에 얻어터져 바닥에 널부러졌지. 군인을 때렸으니 발각되면 다른 군인들이 쫓아올 것이 틀림없어서, 라일락은 우선 요거트를 데리고 골목 안으로 숨었음.

요거트는 그때까지도 왕국 군대 소속의 군인들이 왕자인 저를 알아보지 못하고 오히려 귀중품을 털어가려 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 멍했지. 어떻게 이런 일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이럴 리가 없다는 말만 중얼거리는 요거트에게, 라일락은 "... 이게 요구르카의 현실이야." 하고 딱 한 마디만 해 줌. 요거트는 얼른 라일락을 올려다 보았지.

"저, 젊은 군인들이어서 아무 것도 모르는 걸거야. 이 도시의 지방관을 만나면..." "그 또한 저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걸." "그럴 리가 없어. 아바마마의 명을 받고 이 도시를 다스리는 지방관이 왕자인 나를 못 알아볼 리가 없잖아!" 요거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당장 지방관을 찾아갈 기세였으나, 라일락은 요거트의 망토 자락을 굳게 잡았음. 골목 밖으로 군인들 여럿이 지나가면서 군인을 공격한 놈들을 찾아서 감옥에 집어 처넣겠다고 하고 있었거든. 살기 등등한 그들을 골목 틈사이로 바라보며 라일락은 숨을 죽였고, 요거트는 치를 떨었지.

결국 지방관을 만나기는커녕 군인들의 눈을 피해 숨어다니다 겨우 도시를 빠져나온 둘... 요거트는 여전히 혼란이 가시지 않는 얼굴로 라일락을 따라 걸었음.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자꾸만 그 도시를 돌아보며...

하루를 꼬박 걸어 그들은 다음 도시에 도착했는데, 그곳의 풍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을만큼 참담했음. 꽤 큰 규모의 도시였건만, 도시 전체에 사람이 하나도 없는... 빈집만 널려있고 스산한 모래바람만 불어오는, 그야말로 유령도시였음. 요거트는 물론이고 라일락도 처음보는 풍경에 크게 놀랐지. 그러나 라일락은 곧 이유를 알았음. 오랜 가뭄에 지친 사람들이 도시를 버리고 떠나버린 것을... 그러나 요거트는 이런 광경은 단 한번도 상상하지 못했다는 얼굴로, 당황한 숨을 몰아쉬며 텅빈 도시를 돌아보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도시 한 가운데의 광장에 있는, 말라 비틀어진 분수 조형물을 어루만지며 요거트가 탄식했지. 라일락은 황폐한 도시의 풍경을 눈으로 훑은 뒤에, 요구르카엔 지금 몇년 째 극심한 가뭄이 들었고, 다들 견디지 못해 고향을 버리고 떠난 것 같다고 말했음. "하지만... 관개 시설이 있잖아! 그걸로 큰 강에서 물을 끌어다 쓸 수 있을텐데 어째서..." 요거트가 반박했지. 라일락은 고개를 가로저었음.

요구르카를 가로지르는 큰 강은 거대한 사막을 가로지르는 것 치고는 마를 일이 없는 강이었음. 그야말로 요구르카의 젖줄이나 다름없는 귀중한 자원... 그래서 강물을 끌어다 농업 용수로 사용할 수 있게 각 도시에 관개 시설을 갖추고 있었으나... 몇년동안 든 지독한 가뭄으로 인해 수도에서 사용할 물이 줄어들게 되자, 왕실에서는 각 도시의 관개 시설을 막아버리고 강물을 모조리 수도로 돌려버린 것이었지. 이 탓에 지하수를 활용하지 않고 관개 시설에 의존하고 있던 도시는 고스란히 말라죽고 만 것이었음...

라일락이 말해주는 진상에 요거트는 큰 충격을 받고 말았음. "아... 아바마마께서 그런... 명령을 내리셨단 말이야...? 백성들이 죽을지도 모르는 그런 걸...?"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요거트가 더듬거리며 묻자, 라일락은 고개를 가로저었지. "그럼 대체 누가 그런 명령을..." 요거트는 그렇게 운을 떼었다가, 곧 누가 그런 명령을 내리라고 간언했는지 떠올렸음. 그것은 다름아닌...

"... 형님이구나." 요거트는 무너지듯 중얼거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음. 그리고 거기에 동조했던 자신을 떠올렸지. 왕궁에는 물이 마를 날이 없었는데. 차가운 물, 따뜻한 물을 가리지 않고 언제든 펑펑 쓸 수 있었고, 정원에는 커다란 분수가 몇 개나 있었는데. 목욕을 할 때는 물 온도가 맞지 않거나 입욕제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기껏 받아놓은 물을 죄다 버리고 다시 받으라고까지 했는데, 그것이 전부... 강물을 틀어서 끌어온 것이었다니. 백성들의 목숨값이었다니!

주저앉은 요거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소리없이 울었음... 이제까지 사막을 거슬러 오며 마주한 수많은 참상들을, 기껏 외면하고 있었던 백성들의 궁핍한 삶을 이제는 부정할 수 없었으니까... 사실은 처음 갔던 절벽 아래 마을의 모습부터 요거트에게는 큰 충격이었는데, 그땐 그저 수도로 돌아가는 것만이 더 중요한 일이었기에 애써 모르는 체 하고 있었던 것임. 그리고 현실을 부정했지. 여기는 요구르카가 아니라 변경지대라고... 그러나 라일락과 함께 여기까지 오는 동안, 그도 슬슬 요구르카의 진짜 모습이 무엇인지 다시 새기게 되었던 것인데... 그럼에도 이럴 리가 없어, 이건 요구르카가 아니야 라고 부정하던 것이, 이제는 피할 수 없는 진실이 되었고, 그 원인이 자신에게 있음을 안 요거트는... 깊게 절망하여 그 자리에서 눈물을 줄줄 흘려가며 울었음... 라일락은 그를 달래지 않았지.

한참 뒤에야 겨우 눈물을 그친 요거트는 지저분한 소매 자락으로 눈물을 닦은 뒤, 자리에서 일어났음. 아무 것도 없는 도시에서 하루를 보내기는 어려우니 다음 마을로 떠나야 했지만, 벌써 해가 져 가고 있었기에 아무데나 빈 건물로 들어간 둘... 그곳에서 요거트는 라일락과 마주 앉아 말없이 상념에 잠겨있다가, 늦은 밤이 되고 달이 뜨고 나서야 입을 열었지. "... 그래서, 넌 정체가 뭐야? 그리고 난 아직 네 이름도 몰라."

요거트의 물음에 라일락은 고개를 들어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어 자신의 이름을 밝혔음. 그리고... 자기가 반란군 소속의 암살자인 것도 이야기 했지. 요거트는 어렴풋이 예상은 했지만 라일락의 정체가 단순한 납치범이 아닌 것을 알고 잠시 진저리를 쳤음. 그러나 평소 같았으면 무엄한 놈이라거나, 당장 감옥에 집어 넣겠다거나 하는 소리를 했을 요거트는, 침착하게 다시 물었지. "... 반란군이라는 세력이 만들어진 건 괜한 것이 아니겠지? 그리고 나를 납치한 목적도..." 라일락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지. "진실을 말해줘." 요거트의 간절한 목소리에, 라일락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뜨고는, 요거트를 마주보며 나지막이 요구르카의 현재 상황과 반란 세력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지.

동쪽 창가에 떴던 달이 서쪽 창가로 기울어질만큼 긴 이야기였지만 요거트는 라일락이 하는 말을 끝까지 듣고 이해했고 마음에 새겼음. 그리고 앞으로 자신이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 생각했지. "... 수도로 돌아가고 싶어. 그리고 가서 아바마마께 지금 요구르카의 모습이 어떤지 말씀드려야겠어." 요거트의 눈에서 굳은 의지를 읽은 라일락은 그를 무사히 수도에 데려다 주겠노라고 말했지.

그 뒤로 지난번과 같이 완전히 망해버린 도시를 만나지는 않았으나 다른 곳의 실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기에, 요거트는 왕궁으로 돌아가면 반드시 아바마마께 요구르카의 실상을 말하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막은 관개 시설을 개방하고 백성을 구제하기 위한 정책을 펴야 한다고 간언하기로 마음먹었음. 처음과는 사뭇 달라진 요거트의 모습과 태도에 라일락은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들긴 했지만... 이정도로 참혹한 모습을 직접 보고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괴물이겠지 싶었고, 요거트크림이 겉보기와는 달리 올바른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에 안도했지.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드디어 그들은 요구르카의 수도에 당도했음. 그들은 먼저 반란군 지하조직의 근거지를 찾아갔지. 언젠가 라일락이 보낸 전서구를 받긴 했으나, 그게 진짜인지 확인할 길이 없어 긴가민가 했던 반란군 동지들은 라일락이 왕자를 데리고 나타나자 크게 놀랐음. 그들은 왕자인 요거트크림에게 큰 반감을 드러내고 당장 결박하여 협상의 빌미로 쓰자 했지만, 라일락이 동지들을 가로막았지. 그리고 요거트가 그간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설명했음. 동지들은 미심쩍은 눈치로 요거트를 쳐다보았는데, 요거트는 그들이 드러내는 적의를 이해하고 차분히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지. 자신을 납치한 행위는 아직도 용서하기 어렵지만, 덕분에 요구르카의 진짜 모습을 되돌아 볼 수 있었다고. 그리고 이제는 그들과 같은 뜻을 가지게 되었으니, 지금이라도 아바마마를 찾아가 백성을 구제하는 정책을 펴야한다고 간언하겠다고.

그러나 반란군 동지들은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내비쳤는데... 이유인 즉, 바뀐 왕이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을 거라는 것이었지. 왕이 바뀌었다는 말에 요거트는 깜짝 놀랐음. 그 얘기는... 형님인 플레인 요거트가 왕이 되었다는 말이잖아!

알고보니 2왕자 요거트크림의 납치 작전 이후 보고가 어찌 들어갔는지 요거트는 죽은 것으로 되어서, 그 소식에 큰 충격을 받은 나이 든 왕도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을 거두었다는 것임... 후계자가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왕이 죽었으니 자연히 왕위는 하나 남은 왕자인 플레인에게 넘어간 것이었고. 아바마마께서 돌아가셨다는 말에 요거트는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을 무척이나 슬퍼했음... 그리고 잠시 반란군을 원망했지만, 이제는 자기가 해야할 일이 있었으므로, 요거트는 형을 찾아가기로 했지. 반란군은 요거트의 결정을 그리 탐탁지 않아 했음. 현 왕인 플레인 요거트는 선대 왕보다도 더욱 포악한 정책을 펼쳐서 백성들을 괴롭히고 있는데, 자식도 아닌 동생의 말을 들어줄까 하여... 라일락도 잘 안 될 것 같다고 말했고, 요거트 또한 크게 자신은 없었지만 그래도 아무 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았으므로, 왕궁에 들어가기로 함.

라일락은 반란군 소속이고 신분이 불분명하여 요거트와 동행할 수 없었음. 대신 그를 몰래 왕궁 앞까지 데려다 주고, 행운을 빌어주었지. 요거트는 라일락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꼭 형님에게 자신의 뜻을 전하겠다고 굳게 다짐했지. 왕궁 앞에서 비루한 행색의 그를 의심하는 왕실 경비에게 요거트는 왕실 문장이 새겨진 반지를 보여주었고, 곧 그는 왕궁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음. 라일락은 먼발치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요거트가 왕궁 안으로 들어가자 조용히 어둠 속에 몸을 숨겼지.

몇달 전에 죽은 것으로 알려진 2왕자가 살아서 나타나니 왕궁은 단연 난리가 났음. 플레인 또한 요거트가 살아서 돌아왔다는 말에 크게 놀랐지. 요거트는 저를 모시려는 시종들은 잠시 물러두고, 당장 형님부터 알현하겠다고 하여 플레인을 만났음. 화려한 왕좌에 앉아 고급스러운 옷을 입고 윤기가 자르르한, 왕이 된 형님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요거트는 제가 보고 듣고 겪어온 백성들의 참상이 더욱 절절하게 느껴졌음... 그래서 비루한 행색 그대로 형 앞에 무릎을 꿇고 말했지. "백성들을 구제해 달라" 고...

플레인은 처음 요거트가 납치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소식을 바로 전하지 않고 동생이 죽었다고 바꾸어 아버지께 전하였음. 플레인은 바보가 아니어서 왕실을 둘러싼 정계의 흐름이 어찌 돌아가는지 이미 파악하고 있었거든. 선왕은 당연히 큰 충격을 받았고, 요거트를 지지하던 세력도 왕자의 죽음에 뿔뿔이 흩어져 대부분이 플레인 밑에 붙었음. 이후 아버지는 병을 얻어 시름시름 앓다가 돌아가셨고, 플레인은 왕이 되자마자 저를 반대했던 세력를 숙청해버렸지. 그리고 상당히 공포스러운 정치로 어느 누구도 자신에게 반기를 들 수 없도록 했음. 이제는 왕국 곳곳에 숨어있는 반란 세력을 쥐잡듯이 찾아 소탕하려는 중인데, 이 참에 동생이 살아 돌아오다니...

플레인은 가느다랗게 뜬 눈으로 얼토당토 않은 헛소리를 지껄이는 동생을 노려봤지. 정실도 아닌 첩의 소생인 주제에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 자기가 왕위를 차지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꼴보기 싫은 자식. 살아 돌아온 것도 역겨운데 오자마자 하는 소리가 저딴 소리라니, 플레인은 속으로 혀를 쯧 찼다가, 가만히 들어보니 요거트가 하는 말이 딱 반란 세력이 하는 주장과 일치하는 걸 듣고는, "고생하고 살아 돌아온 줄 알았더니 반란 세력에 있었구나." 하며 그를 감옥에 집어넣으라는 명령을 내렸음.

사이가 그리 좋진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인자하고 유능했던 형이 자기 말을 들어줄줄 알았던 요거트는 플레인의 명령을 듣고 크게 놀랐지.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 왕궁 밖, 수도 밖에서 백성들이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지 아느냐고 요거트는 목이 터져라 외쳤지만 플레인은 듣지 않았고, 요거트는 그대로 왕궁 호위 무사들에게 끌려나가 지하 감옥에 갇혀버렸음. 그리고 제대로 된 재판 과정도 없이, 그저 반란 세력과 붙어 먹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반란 모의죄가 적용되어 사형이 선고되었지. 차디찬 감옥에서 이 소식을 들은 요거트는 깊게 절망하였음... 빠져나갈 방도도 없으니 꼼짝없이 이렇게 죽겠구나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찰나...

어느날 밤에 감옥 문이 스르르 열렸지. 한쪽 구석에 웅크린 채로 눈을 감고 있던 요거트는 누군가가 감옥 안으로 들어오는 발소리를 듣고 놀라 고개를 들었음. 거기엔 익숙한 누군가... 바로 라일락이 서 있었지. "... 잘 안 될거라고 말했었잖아." 라일락이 그에게 손을 내밀었고, 요거트는 쓴웃음을 삼키며 그가 내민 손을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나 감옥을 탈출했음.

라일락은 요거트를 데리고 반란 세력의 근거지로 돌아왔지. 그러나 이곳 역시 곧 있으면 플레인의 수색 작전에 발각될 위험이 매우 높아서, 반란 세력은 아예 다른 도시로 근거지를 옮기기로 함. 그들도 반란 세력을 따라 타 도시로 나갔지. 라일락과 함께 수도를 떠나며 요거트는 안타까움과 배신감이 점철된 심란하고 서글픈 마음으로 몇 번이나 왕궁을 돌아봄... 하지만 이제는 돌이킬 수 없으니... 화려한 금빛 도시를 뒤로하고 요거트는 척박한 땅으로 들어섰지.

요거트가 탈옥한 뒤에 플레인은 길길이 날뛰며 당장 요거트크림과 그를 돕는 반란 세력을 찾아 절멸시키라고 명을 내렸음. 수도엔 사방에 경비가 쫙 깔리게 되었고, 바깥쪽 도시들도 군대가 돌아가며 수색 작전을 벌여서 어느 한 곳에 터를 잡기 매우 불리한 상황이었지. 그래도 라일락과 요거트를 비롯한 반란 세력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왕실 군대의 눈을 피하여 이 도시 저 도시를 옮겨다녔음.

그러면서 그들은 수도를 둘러싼 모든 도시의 백성들을 포섭하여 거대한 세력을 형성하였지. 나라가 너무나도 병들어있던 상황이라, 어딜가도 백성들은 그들을 환영했음. 그리고 다들 당장이라도 들고 일어나 나라를 뒤엎자고 했지. 하지만 병력이 압도적으로 불리하여, 요거트는 좀 더 시간을 들여 군대마저 포섭하자고 했음. 지방에 주둔하고 있는 군대가 부패 세력과 맞물려 양아치 짓을 하고 있던 걸 기억해 냈거든.

반란을 준비하는 시간은 아주 오래 걸렸음. 거의 1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지. 하지만 다들 두 번째는 다시 없을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에, 한번에 혁명을 성공하고자 의지를 모았음. 그동안 요거트는 반란 세력에서 빠질 수 없는 핵심 인물이 되었고, 자신을 돕는 라일락과 각별한 관계가 되었지. 맨 처음 절벽에서 떨어진 이후부터 라일락이 그의 곁을 지켜주고 있었으니까... 둘 중 어느 누구도 그들의 관계가 이런 쪽으로 발전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그간의 수많은 일로 인해 서로에게 특별한 감정이 생긴 덕에, 둘은 연인 관계가 되었음.

"... 잘 할 수 있을까? 라일락..." 드디어 대규모 반란을 일으키기로 한 전날 밤에, 요거트는 라일락의 품에 몸을 기대고 물었지. "할 수 있어. 여기까지 헤치고 온 너라면." 라일락은 요거트의 손을 끌어다 깊게 입을 맞추었음. 그리고 그 손에 단검을 쥐어주었지. "언제든 내가 너를 지킬테니..." 라일락이 속삭이는 맹세를 들으며 요거트는 그가 쥐어준 단검을 더욱 굳게 쥐었지. 이 검을 누구의 심장에 꽂아야 할지 분명히 알고 있었으니...

다음날 새벽, 요구르카 전역에서 동시에 백성들이 들고 일어나 각지의 지방관청을 습격하고 도시를 장악했음. 라일락과 요거트는 수도에서 준비하고 있다가, 백성들이 도시를 장악했다는 소식이 수도로 속속들이 날아들며 도시 전체가 패닉에 빠진 틈을 타서 반란을 일으켰음. 지방 점령 소식에 놀란 왕실 군대가 그들을 제압하기 위해 수도에 최소한의 병력만 남겨두고 출정한 뒤에 말이지. 아주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동조했고, 수도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음. 백성들의 분노에 힘입어 반란 세력은 곧바로 왕궁까지 당도할 수 있었지.

왕궁에는 군대와는 다른 왕궁 호위 무사들이 상주하고 있어 뚫기가 매우 어려웠음. 그들은 군인들 중에서도 최정예들만 가려 뽑은 이들이었으니... 하지만 분노한 백성들의 수가 워낙 많았고, 오랜 시간 준비해 온 반란 세력의 작전이 먹혀들어 왕궁의 문은 활짝 열렸음. 백성들은 제대로 된 무기도 없었고, 설사 무기가 있더라도 제대로 다루지 못했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기세를 밀어붙여 왕궁 호위 무사들을 떨쳐내었지. 궁지에 몰린 그들은 최후의 보루나 다름 없는 왕을 지키기 위해 정궁을 빈틈없이 둘러쌌고, 군대가 돌아오기까지 버티기로 하였음.

타 지방으로 갔던 군대가 수도로 소집되기 이전에 왕을 죽여야만 했기에 백성들은 필사적으로 호위 무사들에게 달려들었으나, 그들 역시 목숨을 걸고 싸우는 터라 방어가 매우 단단했음... 그리고 점점 시간이 흐르며 많은 백성들이 부상을 당하고 지쳐 나가떨어지는 바람에 반란 세력도 힘을 잃어가고 있었지. 라일락과 요거트 역시 백성들과 함께 호위 무사들을 뚫고 들어가려 했지만 몇 차례의 시도가 계속 실패하여 완전히 지친 상황.

헌데... 그 상황에서 전령 하나가 지방으로 나갔던 군대가 수도에 돌아왔다고, 이제 막 성문을 밟고 들어오며 백성들을 잡아들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는 거. 그 자리에 있던 반란 세력들은 패닉 상태가 되고, 호위 무사들은 역전된 상황에서 기세를 몰아 반란군을 소탕하겠다며 무차별적으로 백성들을 베기 시작함. 다들 호위 무사들을 피해 도망가며 비명을 질러댔지. 라일락과 요거트도 급히 몸을 피하며, 특히 라일락은 요거트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호위 무사들에 맞서 싸웠지.

군대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플레인을 비롯한 귀족 몇몇은 정궁에서 나와 쫓겨가며 죽는 백성들을 보고 큰 소리로 비웃었음. 제까짓 것들이 뭘 할 수 있겠느냐며... 특히 플레인은 도망치는 백성들 중에 제 동생, 요거트크림이 섞여있는 것을 발견하였고, 호위 무사들에게 그를 사로잡아 끌고 오라는 명령을 내렸지. 호위 무사들은 그들을 가로막는 백성들을 개패듯 패고 끌어다 잡아두며 요거트를 향해 다가갔고... 그 앞을 라일락이 가로막았지만, 혼자서는 요거트를 지키기에 역부족이었던 탓에, 라일락은 부상을 입고 쓰러지고 요거트는 호위 무사들에게 사로잡히고 말았음.

호위 무사들에게 머리채를 붙잡힌 채로 플레인 앞에 끌려오고 만 요거트크림... 플레인은 한 나라의 왕자인 신분으로 어딜 감히 반란 세력에 가담하여 반란을 모의하였느냐며, 제 어미를 닮아 천하고 더러운 자식이라고 모욕을 주었지. 가차없이 뺨을 갈기고 침을 뱉는 플레인 앞에서 요거트는 이를 악물고 눈을 질끈 감은 채로 모욕을 견디었음.

끝까지 버티는 요거트를 보고 분노가 치밀대로 치민 플레인은 요거트의 머리채를 끌어올려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세운 뒤에 고함을 쳤지. "그래, 네놈을 어찌 죽여줄까? 이 자리에서 목을 베어 성밖에 내걸면 그놈들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되겠구나!" 플레인은 곁에 선 호위 무사의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내었고, 그걸로 당장 요거트의 목을 찌르려던 찰나에...

어디선가 날아온 날카로운 무기가 요거트의 머리를 붙잡은 플레인의 손을 가차없이 베고 지나갔음. 갑작스러운 고통에 플레인은 비명을 지르며 요거트를 붙잡고 있던 손을 놓쳤고, 요거트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품 안에서 단검을 꺼내어 플레인의 배를 있는 힘껏 찔렀지. 단검의 칼날이 복부에 박히자마자 플레인은 헉 하고 고통스러운 소리를 내었고, 요거트는 끝까지 단검을 쥐고 있다가 칼날을 비틀어 뽑아버렸음. 방어할 새도 없이 왕이 공격당해 쓰러지자마자 호위 무사들은 요거트를 향해 칼날을 들이댔으나, 뒤이어 달려든 라일락이 그들을 떨쳐내고 요거트를 겨우 구해내었음...

"라일... 라일락!!"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저를 구하러 온 라일락을 부둥켜 안고 요거트는 눈물을 흘렸지... 라일락은 가뜩이나 큰 부상을 입었는데도 요거트를 구하겠다고 무리한 터라 그의 품에 몸을 기대며 쓰러졌음. 요거트는 라일락을 품에 꽉 끌어안았고, 왕이 죽은 걸 발견하자마자 다시 전세가 역전된 백성들이 그대로 기세를 몰아 왕궁을 완전히 장악했음. 왕과 함께 숨어있던 귀족들은 왕이 죽자마자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었고 말이야.

왕이 죽었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수도 전체로 퍼져나갔고, 무자비한 진압을 하고 있던 군대에도 닿았지. 군대는 그 즉시 진압 의지를 잃고 항복을 선언했음. 마지막 병사 하나가 들고 있던 창을 내던짐과 동시에 요구르카 전역에는 만세 소리가 울려퍼졌지. 혁명의 성공을 부르짖는 만세 소리가!

백성들이 기쁨에 차서 혁명가를 부르는 동안, 요거트는 쓰러진 라일락을 끌어안고 하염없이 울었음... 라일락이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죽어가고 있었으니까... 기쁨에 차서 춤을 추던 이들은 곧 요거트가 슬퍼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고, 즉시 의사를 찾았지. 라일락은 요거트의 손에서 벗어나 의사에게 맡겨졌고, 백성들은 혁명 성공의 주역인 요거트를 새로운 왕으로 추대하였음. 요거트는 성공의 기쁨보다는 라일락이 더 걱정되었지만... 백성들의 염원이 이루어진 기쁜 자리에서 슬퍼할 수는 없었기에, 그들과 함께 기쁨을 누리고 기꺼이 새 왕위에 올랐지...

요거트크림은 요구르카의 새로운 왕이 되었지만 당장 즉위식을 치를 여유는 없었음. 당장 혁명 이후 엉망이 된 수도와 나라를 정비해야했고, 오랜 가뭄에 시달려 죽어가는 백성들을 구제하는 것이 우선이었으므로... 요거트는 당장 막았던 관개 시설부터 개방하였고, 왕실 곳간을 비롯하여 지방관청의 곳간을 개방해 백성들이 식량을 얻을 수 있도록 했음. 그리고 불합리한 제도를 손보기 시작했지.

혁명 이후 몇달 뒤, 요구르카는 빠르게 안정세를 되찾았고, 그 해는 기적처럼 비까지 내려서 백성들의 숨통이 트이게 되었음. 이쯤 되니 이제 새 왕의 즉위식을 제대로 거행해야 하지 않겠냐는 이야기가 들려왔지. 요거트는 왕이 된지 벌써 몇 달이나 지났는데 이제와서 즉위식이라니 얼토당토 않다고 거절했으나, 백성들이 나서서 축제를 열고 싶다고 하여 그 제안을 받아들였음. 다들 새로운 왕을 위한 즉위식을 기쁘게 준비했고, 너나 할것 없이 모두가 그 날을 기다렸지.

즉위식 당일, 요거트크림은 누구보다 많은 이들의 축복 속에 드디어 요구르카의 진정한 왕으로 인정받게 되었음. 그리고 그 자리에... 부상을 치료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고 또 정무를 처리하느라 바빠서 만나지 못했던 연인인 라일락을 다시 만나게 되어, 요거트는 환희와 기쁨의 눈물을 흘렸지. 라일락은 펑펑 울면서 제 품에 안기는 요거트를 있는 힘껏 안아주었고, 요거트가 겨우 눈물을 멈춘 뒤에는 그에게 사랑을 맹세하며 키스했음. 그 자리에 모인 모두가 그들에게 행복과 안녕을 빌며 축하의 박수를 보냈지.

이후 요거트크림은 요구르카의 왕으로서 백성을 돌보고 나라의 부흥을 위해 힘썼음. 물론 실수를 할 때도 있고,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는 많이 헤매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백성들이 그를 지지하고, 또 누구보다 그를 사랑하고 지탱해 주는 반려가 있기에 요거트크림은 왕으로서의 직무를 꽤 훌륭하게 해 내었지. 그 와중에 다들 요거트가 왕비를 맞이하고 자손을 얻길 원하였으나, 요거트는 자신의 평생의 반려는 라일락뿐이라고 굳게 못을 박았고, 자신의 후계자는 실력도 있으면서 성정이 바른 자를 엄선하여 골라 정하겠다고 했음. 백성들은 왕의 자손이 없는 것을 무척 아쉬워 했지만 그래도 왕의 결정에 따랐지.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나이를 먹은 요거트는 약속했던 대로 엄중한 시험과 됨됨이를 살펴 드디어 왕위를 이을 후계자를 정하였고, 그 뒤로 몇년 더 왕위에 있다가 스스로 물러났음. 그리고 미련없이 왕궁을 떠났지. 왕위를 이은 후계자는 요거트가 계속 왕궁에 머무르기를 원했으나, 요거트는 그 제안을 거절하고 라일락과 함께 시골 마을에 내려가 살기를 원했음.

그들은 아주 오래전에 그들이 처음 만났던 그곳... 절벽 아래 마을까지 내려왔지. 그곳엔 그때 그들을 구해주었던 부부는 없었지만, 그 아들딸들이 계속 거기에 살고 있음. 또 라일락이 "언젠가 은혜를 갚겠다"고 말했던 것을 지키기 위해 여러모로 지원 사업을 벌인 결과, 이제는 꽤 그럴듯한 규모의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음. 마을 주민들은 은퇴한 왕과 그의 반려를 반갑게 맞이했고, 두 사람이 평화로운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해 주었음.

둘은 그곳에서 가끔은 그들이 겪었던 엄청난 일들을 되돌아 보며, 평화와 사랑이 넘치는 안정된 삶을 누리었음. 그리고 한날 한시에 조용히 함께 세상을 떠났다는 거. 마을 주민을 비롯하여 요구르카의 모든 백성이 둘의 죽음을 슬퍼했으나, 그들이 죽어서도 분명 행복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고, 선왕과 그의 반려가 세운 업적을 기리게 되었다... 는 것으로 긴 이야기를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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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제가 라일요거로 사골곰탕 김치찌개 끓이는 집이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2022.1117 카테고리 및 제목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