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일락=박바람
요거트크림=오구름
오메가버스 바람구름... 증말 뜬금 없지만 오메가 페로몬에 울렁증이 있는 알파 박바람이 보고 싶음ㅋㅋㅋ 알파여서 무조건 다른 알파나 오메가의 페로몬을 감지할 수 있는데, 같은 알파의 페로몬에는 아무 반응 없지만, 오메가 페로몬은 맡았다 하면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울렁대고 가끔은 구역질도 나는ㅋㅋㅋㅋ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고, 사춘기 지나고부터 증상이 조금씩 심해짐ㅋㅋㅋ... 보통 알파나 오메가는 사춘기가 지나면 러트나 히트가 오는데(날조 설정임), 박바람은 러트는 안 오고 뜬금 없이 오메가 페로몬 울렁증이 생겨서 고통받는 거ㅋㅋㅋ 학교엔 알파, 베타, 오메가가 혼재되어 있고, 거기에 여학생 대부분은 오메가이다 보니까, 본의 아니게 자꾸 여학생들을 기피하게 되는 박바람ㅋㅋㅋ 학교에서 손꼽히는 미남인데도 불구하고...
박바람 친구들은 박바람이 알파인 걸 알고 있고, 또 오메가 페로몬 울렁증이 있는 것도 앎ㅋㅋㅋㅋ 페로몬 울렁증이라는게 원래 페로몬을 감지하지 못하는 베타를 제외한 알파, 오메가 가리지 않고 생기는 증상이라지만, 정말 드물게 생기는 증상이고, 특히 알파가 울렁증을 가지는 경우는 진짜 흔치 않음ㅋㅋㅋ 게다가 박바람은 오메가 페로몬의 향이 좋든 싫든 간에 무조건 울렁증이 나타나서, 다들 신기해하면서도 불쌍하다고 여기는 중임ㅋㅋㅋ... 보통은 상대방이 내 취향이 아니거나 혹은 상성이 꽝인 경우에만 페로몬이 역겹다고 느끼는데, 박바람은 상대 불문하고 일단 "오메가 페로몬" 이면 다 울렁증을 보이기 때문에...
그래서 한참 사춘기 장난꾸러기 시절엔 친구들이 일부러 박바람 앞에 오메가를 데려오기도 했음ㅋㅋㅋ... 계속 접하다보면 적응돼서 괜찮아질 것이라는 말도 안되는 민간 요법(?)을 들이대며... 그런데 그것이 역효과가 나서, 처음엔 그저 속이 메슥거린다 정도였던 증상이 악화되기만 함ㅋㅋㅋ 머리도 아프고 구역질도 나고ㅋㅋㅋ 급기야 학교에서 가장 예쁘고 페로몬 향이 좋은 오메가 여학생 앞에서 헛구역질을 하다 눈물을 줄줄 흘리며 도망치는 박바람을 보고 다들 "... 이제 이런 장난은 그만 두자." 했지... 그리고 멀리 사라진 박바람을 측은해 함... 쟤 알파인데, 저러다 장가도 못 가겠다고ㅋㅋㅋ....
그런데... 박바람의 절친 오구름은 오메가임ㅋㅋㅋ;; 하지만 박바람을 비롯한 친구들은 이걸 모름ㅋㅋㅋ 오구름이 워낙 오메가 형질 발현이 늦기도 했고(사춘기 지나고 나서 오메가로 형질이 확정됨), 집안에서 페로몬 조절법을 엄하게 가르치기도 하고, 또 사용하는 페로몬 억제제가 최고 성능을 가진 초고가 약품이었기 때문에... 재벌가 집안이다보니 이정도 약을 구해주는 건 문제도 아니었다만, 무엇보다도 오구름 본인이 원해서 먹는 약임. 왜냐면... 박바람이 오메가 페로몬 울렁증이 있는 걸 알잖음... 박바람이랑 계속 친구로 지내고 싶은데, 자기가 오메가면 박바람은 맨날 울렁증에 시달릴 테니까, 억제제를 먹어가며 자기 정체를 숨긴 거지. 덕분에 박바람은 오구름이 베타라고 굳게 믿고 있음. 오구름한테 아무런 페로몬도 느낄 수가 없으니까...
그렇게 둘은 상대방에게 정체를 숨기고, 모르는 채로 계속 친구로 지냈음. 문제는 알파와 오메가의 관계에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이끌림... 즉, 오구름이 박바람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임ㅋㅋㅋ... 겉보기 성별과 유전 형질이 뒤섞인 세상에서 동성-이형 간의 연애는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었으나, 박바람이 오메가 페로몬 울렁증을 가지고 있고, 오구름이 자기 유전 형질을 숨기고 있는 상황인지라... 이 때문에 오구름은 고민에 빠지게 됐지.
사실 억제제 효과가 잘 돌아도 너무 잘 돌아서, 이대로 평생 박바람에게 자기는 베타라고 거짓말을 해도 될 수준임ㅇㅇ 그런데... 만에 하나 실수로라도 억제제를 먹지 않았다든가, 효과가 반감된다거나 하는 일이 생겨서 박바람에게 정체를 들키게 된다면... 몇 년 동안 오구름이 자기를 속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박바람은 오구름에게 분명 크게 화를 내고 실망하게 될 것임... 그것만큼은 상상으로라도 견디기 어려운 오구름은, 늘 박바람을 바라보며 마음 속으로 좋아한다고 속삭였지만, 절대 그걸 입밖으로 낸 적은 없었지.
한편 박바람 또한 오구름을 좋아하고 있었는데, 이쪽은 오구름이 베타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었음ㅋㅋㅋ 알파라고 꼭 오메가랑만 짝이 지어져야 하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자기가 오메가 페로몬 울렁증을 가지고 있으니, 차라리 베타랑 이어지는 게 서로 속이 더 편하지 않겠음? ㅋㅋㅋ 다만 마음에 조금 걸리는 건, 오구름은 재벌 3세인데 반해 자기는 너무 보잘것 없는 서민이다보니... 그게 걸림돌이 되어 차마 오구름에게 고백하지 못했을뿐, 박바람은 오구름에게 늘 잘해주고 신경을 써주었단 말이지. 오구름을 좋아하니까...
오구름은 오메가 형질의 발현과 동시에 히트가 시작됐음. 그러나 이 역시 집안에서 가르친 빡센 페로몬 조절법과 완벽한 페로몬 억제제 덕에 아무 문제 없이 지나갈 수 있게 됨ㅋㅋㅋ 대신 그건 있었지. 히트 기간에는 아무래도 타인의 페로몬을 민감하게 감지할 수 있어서, 오며가며 만나는 알파나 오메가들의 페로몬이 그닥 달갑지 않다는 점ㅋㅋㅋ 그러다보니 아무리 포커 페이스로 표정을 유지하고 있다지만, 문득문득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리는 오구름...
다른 친구들은 눈치채지 못할 만큼 찰나의 순간이지만, 박바람은 우연히 오구름이 그런 표정을 짓는 걸 봐버렸고, 그 이후부터는 오구름이 왜 저런 표정을 짓는지 조금 신경쓰게 됨. 혹시 주변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나...? 아니면 나한테서 땀 냄새라도 나나?? 싶은 그런ㅋㅋㅋㅋ 점심 시간 전이 체육 시간이어서 땀을 좀 흘리긴 했는데, 그렇게까지 땀 냄새가 많이 나나 싶어 제 몸 구석구석 둘러보는 박바람을 보고, 오구름은 "너 뭐해? 강아지마냥." 하고 물었지. 박바람은 "아냐... 혹시 나한테서 이상한 냄새 나?" 했고.
오구름은 박바람한테 다가가 코를 대고 킁킁 냄새를 맡았는데, 땀 냄새는커녕 향기로운 라일락 꽃 냄새만 남... 박바람의 알파 페로몬 향... 오구름은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 "아니~ 좋은 냄새만 난다. 걱정 마!" 하고 박바람 어깨를 툭툭 치고, 곧 수업 예비종이 울리자 자기 반으로 돌아갔음. 박바람은 이상한 냄새가 안 난다니 다행이다 싶었지만, 곧 오구름이 맡은 "좋은 냄새"에 의문을 가지게 됐지. 좋은 냄새... 라고? 섬유 유연제 향이라도 나는 건가?
그 뒤부터 어쩐지 오구름이 언제 얼굴을 찌푸리는지 조금 신경쓰이게 된 박바람... 가만 보니까 오구름이 아무때나 이상한 냄새가 난다며 투정을 부리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음. 정확히 어떤 기준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박바람은 한 가지 실험을 해 보기로 했지. 오구름이 고약한 냄새가 난다는 것처럼 얼굴을 찌푸릴 때마다 자기 페로몬을 슬그머니 흘려보기로... 그랬더니 오구름은 크게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어쩐지 좀 더 자기한테 붙어있으려는 것만 같아... 박바람은 설마 오구름이 베타가 아니라, 페로몬을 감지할 수 있는 알파나 오메가인 것일까 의심하게 되었음.
하지만 오구름에게서는 알파나 오메가 특유의 페로몬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서, 혹시 베타도 드물게나마 페로몬을 감지할 수 있는 걸까 찾아봤는데... 베타 형질을 기본으로 알파나 오메가 형질이 30% 이상 섞이면 페로몬을 감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박바람은, 오구름에게 그런 형질이 섞여있나보다 생각하게 됐지. 오히려 그런 점이 박바람에게는 묘한 안도감을 주었음. 오구름이 같은 알파 혹은 심한 페로몬 울렁증을 유발하는 오메가가 아니라는 것이...
그런데 어느날, 박바람은 오구름이 어떤 약을 먹는 걸 발견했음. 친구들이랑 즐겁게 점심 식사를 하고 난 뒤에 오구름이 주머니를 뒤적여 약을 꺼내서 입에 털어넣는 걸 봤단 말이지. 박바람은 "... 너 어디 아파?" 하고 물었는데, 오구름은 태연하게 "응 뭐, 아침부터 두통이 좀 있어서. 진통제니까 넘 걱정 마~" 하고 넘어갔는데... 오구름이 아프다고 하니까 괜히 걱정이 된 박바람은 계속 그를 주시하고 신경쓰게 됐지.
헌데 오구름은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약을 계속 먹는게 아니겠음? 아무리 두통이 심하다고는 해도 사흘 연속으로 머리가 아픈 건 좀 심한 문제가 아닌가 싶어 크게 걱정이 된 박바람은 오구름에게 "너 3일 내내 두통약을 먹고 있는 거 같은데, 병원에 가 보는 게 좋지 않겠어?" 하고 말했지. 그에 오구름은 조금 놀란 얼굴이 되어 "내가 약 먹는 거, 계속 지켜보고 있었어?" 하고 되물었음. 박바람은 "머리가 아프다고 하니까 걱정돼서..." 하고 대답했는데, 오구름은 무어라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표정을 짓더니, "... 그래, 알았어. 걱정 해줘서 고마워. 병원 가볼게." 하고는 박바람에게서 한 발짝 뒤로 물러서고, 조금은 그의 눈치를 보는 거 같았지. 박바람은 오구름의 반응이 평소와는 좀 다른 것 같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거렸음.
점심 시간 내내 박바람네 교실에서 노닥거리다 자기네 반으로 돌아온 오구름은 놀란 가슴을 조용히 쓸어내렸음... 히트 기간이어서 페로몬 억제제를 먹고 있는 건데, 그걸 박바람이 주시하고 있었을 줄이야! 보통은 두통이라고 둘러대면 다들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데, 박바람이 사흘 내내 이걸 신경쓰고 있을 줄은 전혀 몰랐던 오구름은 남몰래 식은땀을 흘렸음; 잘못하면 박바람을 속이고 있는 걸 들킬지도 몰라. 앞으로 더 조심해야겠다... 오구름은 마음을 다잡으며 깊은 심호흡을 했지.
다행히 오구름의 히트는 3-4일 정도로 짧은 기간이어서, 거기서 특별한 문제 없이 조용히 지나갔음. 그리고 다음 히트는 한달 반 뒤니까, 그쯤 되면 박바람도 잊어버리겠지~ 하고 마음을 놓은 오구름...
수행 평가에, 시험에, 친구들이랑 어울려 놀고, 평소와 같은 일상을 보내다 보니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서 벌써 다음 히트를 맞이하게 된 오구름... 페로몬 억제제를 챙겨 먹는 건 무척 귀찮지만, 억제제 효과가 돌고 있으면 자기 페로몬이 샐 일도, 다른 알파의 페로몬에 영향을 받을 일도 없기 때문에 일상 생활이 무척 편해져서, 꼭 필요한 일이었음. 이번에도 길어야 4일만 약을 먹으면 될테니까, 별일 없이 지나가겠지 생각했는데...
점심 식사 후에 이번엔 오구름네 반에 모여 다같이 웃고 떠드는 중에, 억제제 약효가 조금 떨어진 걸 느낀 오구름은 자연스럽게 주머니를 뒤적여 약을 꺼내 먹었음. 그리고 그걸... 바로 옆에 있던 박바람이 보았지. "너 또 머리 아파?" 알약이지만 씁쓸한 맛이 남은 탓에 잠시 진저리치는 오구름에게 박바람이 물었고, 오구름은 화들짝 놀라서 "어, 어? 으응... 머리가 조금 아프네..." 하고 어물쩍 둘러대었음. 그랬더니 박바람은 대번 걱정스러운 표정이 되어서는, 오구름의 팔을 붙잡고 보건실에 가자고 하는 것임... 오구름은 "아, 아냐, 괜찮아. 그 정도는 아니야!" 하고 손사래를 쳤지만, 박바람은 기어이 오구름을 데리고 교실 밖으로 나왔음. 결국 오구름은 박바람에게 끌려가다 시피 보건실로 갔지.
"너 머리 한 번 아프기 시작하면 오래 아프잖아..." 박바람은 이전에 오구름이 히트 기간에 약을 계속 챙겨먹었던 걸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았음... 오구름은 "응... 그렇지..." 하며 박바람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끄덕거렸지. 이녀석, 나에 대해 이렇게까지 관심이 많다니... 더 조심해야겠는데... 생각하며... 어쨌든 박바람은 오구름을 보건실에 데려다 놓고, 푹 자면서 쉬라고 해 놓고 가버렸음.오구름은 머리도 아프지 않고 억제제 효과도 잘 돌아 몸상태가 아주 멀쩡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좀 쉴까, 싶어서 보건실 침대에 드러누웠음. 그리고 하교 시간이 될 때까지 그냥 푹 잠들어버렸지.
하교 시간이 다 되어 박바람은 오구름네 반으로 왔는데, 오구름이 아직 보건실에서 돌아오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됐음. 그렇게까지 머리가 많이 아픈가, 큰일인데... 박바람은 오구름을 걱정하며 보건실에 왔고, 보건 선생님은 자리를 비운 상태에서 한쪽 침대에 고이 잠든 오구름을 발견함. 그냥 아픈 곳 없이 편안하게 자고 있는 오구름이지만, 오구름이 아프다고 생각하고 있는 박바람 눈에는 어쩐지 핼쓱하게 보이는 것 같아서, 박바람은 조용히 오구름에게 다가갔지. 그리고 잠든 그를 깨우려는데... 그 순간 어딘가에서 놀라울 정도로 달콤하고 부드러운 향기가 느껴지는 거.
이 향기는 뭐지. 박바람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보건실 전체에 감도는 것은 알코올 소독약과 여러 가지 약품이 뒤섞인 이상한 냄새임. 그럼 이 달콤한 냄새는 대체...? 박바람은 설마 싶은 마음에 오구름을 돌아봤고, 그때 마침 오구름이 눈을 떴음. "으어어, 지금 몇 시야...?" 오구름은 눈을 비비적대며 박바람에게 물었지. "... 집에 갈 시간이야. 4시 넘었어." 박바람이 대답하자 오구름은 "와 무슨 사람이 학교에서 4시간을 자냐. 미쳤네ㅋㅋㅋ" 하며 킬킬 웃었지.
"머리, 아직도 많이 아파? 하루종일 자는 거 같네." 박바람이 걱정스레 물었고, 늘어지게 하품하던 오구름은 머리를 긁적이며 "어어... 많이는 아닌데, 아직도 좀 아프긴 하네. 약 먹으면 괜찮아질 거야." 하고는 주머니를 뒤적여 억제제를 꺼냈음. "나 물 좀 한 잔만 떠다주라." 오구름의 부탁에 박바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물 한 컵을 떠다 오구름에게 내밀었고, 오구름은 아무렇지도 않게 억제제를 입에 털어넣고 물을 마신 뒤에 자리에서 훌훌 일어남. "이제 집에 가자~ 오후 수업 안 듣는 거 완전 개꿀이다!" 하며... 박바람은 말없이 약을 먹는 오구름을 빤히 쳐다만 보고 있다가, 조용히 그를 따라 보건실을 나섰음.
오구름과 헤어져 집으로 온 박바람은 바로 컴퓨터 앞에 앉았음. 오구름이 먹었던 약의 이름을 슬쩍 봤거든. 영어 이름이었고 글자를 다 본 것은 아니었지만 몇자 검색해 보면 금방 나오겠지 싶어 검색창에 입력해 보았더니... 검색 결과로 나온 것은 두통약이 아닌 페로몬 억제제였음. 설마하니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온 것을 보고 당황한 박바람은 다른 검색 사이트 몇 개를 돌려가며 다시 검색해 봤지만, 결과는 계속 같은 값인걸... 박바람은 심란한 마음에 잠시 머리를 짚었다가, 약에 대해 상세히 알아봐야겠다 싶어 결과로 나온 내용을 차근차근 읽어보았음...
오구름이 먹은 약은 페로몬 억제제이고, 알파와 오메가 모두에게 듣는 최상급 억제제였음... 한 알에 몇십 만원이 훌쩍 넘는 매우 비싼 약... 비싼만큼 효과가 확실해서, 본인의 페로몬을 완벽하게 차단하는 것은 물론이고 타인의 페로몬에도 영향을 받지 않게 되는... 이 말은, 오구름이 자기처럼 오메가 페로몬 울렁증이 있는 알파이거나... 혹은 주기적으로 히트가 오는 오메가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지. 박바람은 당장 오구름에게 연락을 해 볼까 하다가, 아무래도 이건 얼굴을 직접 보고 얘기를 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폰을 내려놨음.
다음날 박바람은 점심 시간이 되기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점심 먹고 난 뒤에 오구름이 교실로 놀러오자 그를 데리고 다른 애들이 잘 오지 않을 법한 곳으로 감... 박바람을 따라 학교 정원 구석으로 온 오구름은 고개를 갸웃했지. 할 얘기가 있다더니 이런 곳으로... 설마, 그 할 애기라는 게 고백 같은 걸까!? 오구름은 박바람이 무슨 얘기를 할지 감이 오질 않아 괜히 긴장하게 됐는데...!
"오구름." 박바람은 오구름을 마주보고 그의 이름을 불렀음. "응, 응! 왜?" 그에 오구름은 더더욱 긴장하며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지. 손 안에 식은 땀이 나는 거 같아서... "... 솔직하게 대답해 줬으면 좋겠어." 박바람의 부탁에 오구름은 고개를 끄덕거렸지. 뭐 평소에도 딱히 박바람에게 거짓말을 하는 건 없으니까? 자기가 오메가라는 사실을 숨긴 것만 빼고.
"네가 먹은 약... 두통약이 아니지?" 박바람은 작은 목소리로, 그러나 분명하게 물었지. 박바람이 대체 무슨 말을 하려나 설렘 반, 긴장 반 상태로 그를 쳐다보고 있던 오구름은 순식간에 딱딱하게 표정을 굳혔음... "무슨 소리야. 당연히 두통약이지?" 오구름은 혀에 침도 바르지 않고 즉시 거짓말을 했지. 박바람은 잠시 눈을 내리 깔았다가, 마치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 거짓말. 나, 어제 그 약 이름... 검색해 봤어." 하고 말했음. 오구름을 빤히 쳐다보면서. 가끔 친구들이 박바람더러, 눈이 커서 그런지 마주하고 있으면 괜히 속마음을 읽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고 했던 말이 무슨 뜻인지, 오구름은 방금 깨달았음...
등 뒤로 식은 땀이 흐르는 듯한 감각을 느끼며 오구름은 "그, 뭐, 그래서 뭐! 두통약 맞거든?" 하고 허둥대듯 뒤로 한발짝 물러났지. 그러자 박바람이 대뜸 손을 뻗어 팔목을 꾹 붙잡는데, 웬만큼 힘이 들어가 있는 걸 보니 도망치지 못하게 하려는 것 같지...! 오구름은 어떻게든 박바람의 손을 떼어내려고 버둥댔음. 하지만 박바람은 오구름의 팔을 붙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면서 하는 말이... "그거, 두통약 아니잖아. 페로몬 억제제잖아, 오구름." 그 순간 오구름은 멈칫하며 고개를 홱 돌리고 말았지. 젠장...!
"... 솔직하게 대답해 준다고 했잖아." 박바람이 부드럽게 타이르듯 말했고, 오구름은 입술을 꾹 깨물며 눈을 질끈 감았지. 꾹 감은 눈앞은 분명 검은색이어야 할텐데, 머리가 혼란해서인지 눈앞도 어지러운 색으로 온통 엉망진창임... 박바람에게 붙잡힌 팔도 덜덜 떨리고, 다리도 힘이 풀려서 주저앉고만 싶은데, 무엇보다도 이런식으로 박바람에게 거짓말을 한 걸 들키게 된 것이 너무나도 무섭고 수치스러워, 금방이라도 눈물이 날 것처럼 코끝이 찡해지고...
그런 오구름의 혼란스러운 상태를 눈치챈 듯, 박바람은 조심스레 붙잡았던 팔을 놓아주었음... 오구름은 얼른 몸을 움츠리며 뒤로 한발짝 더 물러났지. "... 미안해. 너한테 뭐라고 추궁하려고 그런 건 아니야." 박바람은 오구름을 향해 진심으로 사과했음... 오구름은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눈을 꾹 감고선,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 좋을지 머리를 굴려보았으나... 그저 박바람에게 거짓말을 들켰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 패닉인 머리가 굳어버려서 아무 생각도 나질 않았음... 결국 둘은 어색한 정적과 함께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지.
한참 뒤에야 겨우 마음을 추스른 오구름은 고개를 살짝 들었음. 박바람은 그때까지도 참을성 있게 오구름을 바라보고 있었지. 저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하는 박바람을 발견한 오구름은 이제 더는 거짓말을 해도 의미가 없음을 알았음... "... 맞아, 그거, 페로몬 억제제야." 개미가 기어가는 듯이 아주아주 작은 목소리였지만 박바람은 분명히 들었음. "... 그럼 너는..." 박바람이 조심스레 운을 떼자 오구름이 크게 심호흡을 했지.
"... 나, 오메가야, 박바람." 오구름은 최대한 침착하게, 박바람 앞에 지금껏 숨겨왔던 진실을 털어놓았음... 어느정도 예상은 했다는 듯이, 하지만 역시 당황스러운 듯이 박바람도 잠시 놀라는 것 같았지. 오구름은 주먹을 더욱 꾹 쥐었음... 이제 박바람이 왜 그 사실을 숨겼느냐고 뭐라고 따져도 할 말이 없을 판인데... "왜... 이제껏 숨긴 거야?" 의외로 박바람은 화가 난 것도, 실망했다는 기색도 없이, 오히려 더욱 조심스러운 태도로 그에게 물었지.
"혹시... 내가 오메가 페로몬 울렁증이 있어서, 그것 때문에 불편해서 그랬던 거야...?" 오구름이 대답을 하지 않자 박바람이 먼저 입을 열었음. "... 나 때문에 불편해서 네가 억지로 페로몬 억제제를 먹고 있었던 거라면..." "그럴 리 없잖아." 박바람이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오구름이 가로막았지.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입은 열었지만, 그 다음에 무슨 말을 이어야 좋을지 도저히 모르겠는 오구름은 우물쭈물 거리며 시선을 이리저리 굴렸음... 나는 다음에, 뭐라고 해야 해? 너를... 좋아해? 이런 자리에서 좋아한다는 말을 한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니야? 오구름은 주먹을 꾹 쥐고, 입술을 질끈 깨물었지. 이러는 사이에도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고, 이제는 이 불편한 침묵을 오구름 저 자신이 견디기 어려울 지경이었는데, 그럼에도 박바람은 가만히 오구름을 바라보며 참을성 있게 그가 할 말을 기다리고 있었음...
"나는, 너랑 계속 친구로 지내고 싶어." 오구름은 목이 막혀 나오지 않으려는 소리를 억지로 쥐어 짜냈음. 한참만에 튀어나온 말에 박바람이 놀란듯 눈을 동그랗게 떴지. "이제까지 우린 친한 친구로 잘 지내왔잖아.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지내고 싶어. 그런데..." 한번 말문이 트이자 조금은 숨통이 트이는 듯한 기분으로, 오구름은 계속 말했음. "그런데 너는 오메가 페로몬에 울렁증이 있으니까... 혹시라도 내 페로몬을 맡으면 네가 너무 힘들어 할 거 같아서." 여기까지 말한 오구름은 가볍게 심호흡을 했고, 박바람은 여전히 오구름을 바라보고 있었지. 오구름은 자신을 바라보는 박바람을 곁눈질로 훑어보고는, 이내 시선을 떨어뜨리며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을 이었음.
"사실은, 네가 내 페로몬을 맡고 구역질 하는 모습 같은 건 보고 싶지 않아, 박바람..." 다른 누구도 아닌 네가, 내 페로몬을 맡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심하게 괴로워하는 모습을 본다면 나는 나를 너무 싫어하게 될 것 같아... 차라리 내가 오메가가 아닌 베타였다면, 그랬다면 우리는 아무 걱정 없이 평생 즐겁게 친구로 지낼 수 있었을텐데. 중학생 시절,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남들보다 조금 늦게 유전 형질이 결정되었던 날, 검사 결과지에 찍힌 "오메가"라는 글자를 보고 얼마나 서운했었던지. 이제껏 아무 증상도 없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오메가로 형질이 확정될 수 있냐며 담당 의사에게 따져 물으면서도 오구름은 박바람을 생각했었음. 걔는 오메가를 싫어한단 말이야. 그런데 내가 오메가가 되어버리면, 걔랑 같이 다닐 수가 없게 되잖아...
"......" 박바람은 시선을 바닥으로 떨어뜨린 채 저를 마주보지 않는 오구름을 바라보며 말이 없었음. 오구름은 침묵을 지키는 박바람의 눈길을 받으며 생각했지. 역시 실망했겠지? 몇 년 째 말도 없이 정체를 숨기고 있었으니, 친구 사이에 어떻게 이럴 수 있냐며 화를 내도 이상하지 않아. 오구름은 주먹 쥔 손을 쥐락펴락하며 마른 입술을 축였지. 그러다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라 다시 입을 열었음.
"그, 그래도 있잖아. 내가 먹는 억제제 말야. 무지무지하게 비싼 약이거든? 이게 비싼 만큼 효과가 되게 좋아. 너도 어, 알다시피, 그러니까, 이제까지 내가 오메가인 줄 전혀 몰랐잖아? 그정도로 효과가 좋다니까? 진짜 장담컨대, 이 약 먹으면 내 페로몬이 샐 일은 전혀 없어. 그러니까... 그러니까, 나랑 같이 다니는 거... 걱정 안 해도 돼... 지금까지도 그랬... 잖아?" 아, 나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이제까지 속여서 미안하다고 당장 엎드려서 사죄해도 모자를 판에, 구질구질하게 이게 뭐 하는 짓이냐고! 오구름은 속으로 머리를 쥐어 뜯으며 절규했지만, 한번 입밖으로 나온 헛소리는 멈출 줄을 몰랐음...
"나 진짜 약 안 빠뜨리고 꼬박꼬박 잘 먹을 자신 있거든? 너한테 절대, 절대로 폐 안 끼칠 거니까... 그러니까..." "오구름."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횡설수설하던 오구름의 말을 박바람이 끊어냈음. 오구름은 화들짝 놀라 얼른 입을 다물었음. 역시... 화 많이 났겠지? 약이고 뭐고 더는 꼴도 보기 싫으니까 다시는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할지도... 박바람이 뒷말을 잇기도 전에 오구름은 겁을 잔뜩 먹은 채로 박바람이 무슨 말을 할지 제멋대로 상상해댔지. 그런데...
"... 내가 네 페로몬을 역겨워 할 리가 없잖아." 박바람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 너무 뜻밖이라 오구름은 그대로 심장이 멎어버리는 줄 알았음. "뭐, 뭐라고?" 얼이 빠진 오구름은 방금 전에 들은 것이 혹시 잘못 들은 것인가 싶어 박바람에게 다시 물었지. 박바람은 얼빠진 오구름을 마주보며 다시 말했음. "확신은 없지만, 너라면... 괜찮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아. 진실을 밝혔을 때 박바람이 보일 반응으로 예상한 것 중에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는 상황이 닥치자, 오구름은 말 그대로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는 것만 같았음. "그... 어, 그러니까... 정말... 괜찮아...?" 오구름이 어물쩍대며 묻자, 박바람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지. 아니, 괜찮을 리가 없잖아! 학교에서 제일가는 오메가 여학생의 페로몬을 맡고도 구역질하던 녀석인데! 오구름은 부정하듯 마구 고개를 가로저었지. "아니, 그..., 너무 무리하지 마." 오구름이 한발짝 물러서며 손을 내젓자, 박바람은 오히려 오구름에게 한발짝 다가왔고, 기어이 허공을 휘젓는 손을 붙잡았음. 허둥대다 얼결에 박바람에게 손을 붙잡힌 오구름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야, 야...!" 하고 외쳤는데, 박바람은 오구름의 손을 꼭 잡은 채 제 얼굴 쪽으로 끌어당기며 속삭였지.
"... 시험해 보고 싶어." 박바람의 코끝에 닿는 자신의 손등을 바라보며 오구름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음. 그런 오구름을, 박바람은 전에 없이 진지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다시 말했음. "네 페로몬이라면 분명 괜찮을 거야." 어떻게 보면 간절하기까지 한 박바람의 눈빛을 마주하며, 오구름은 혼란과 긴장이 뒤섞인 와중에 마른 침을 꿀꺽 삼켰지. "그렇다면... 조금만..." 결국 오구름은 눈을 질끈 감은 채로, 아주아주 미약하게 페로몬을 흘려보냈음... 가족들 외에는 어느 누구에게도 드러낸 적 없는 저 자신의 오메가 페로몬을...
사방이 탁 트여 있지만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 속에서, 손등에 닿은 박바람의 코끝을 통해 오구름은 박바람이 차분히 깊은 숨을 몰아쉬고 있음을 알았음. 오메가 페로몬을 저렇게 깊게 들이마셔도 되는 걸까? 이러다 박바람 진짜 토하는 거 아니야...? 오구름은 불안한 마음에 감았던 눈을 살그머니 떴고, 그 순간 저를 지긋한 눈길로 바라보는 박바람과 눈이 마주쳤지. 화들짝 놀란 오구름과는 달리, 박바람은 느리게 입을 열었음.
"이것 봐. 아무렇지도 않아." 박바람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음. 어, 오구름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박바람을 바라봤고. "... 네 페로몬, 달다." 박바람이 조금 수줍은듯 미소지으며 속삭인 말에, 오구름은 순식간에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을 느꼈음. 그리고 손등에 무언가 따스하고 촉촉한 것이, 그러니까 박바람의 입술이 닿은 거 같다고 느꼈을 즈음에, "야! 너네 거기서 뭐해? 점심 시간 다 갔다!" 누군가가 저 멀리서 그들을 향해 소리치는 것을 들었고, 둘은 얼른 서로에게서 한발짝 떨어졌지.
"가자. 늦으면 괜히 혼나니까." 아직도 얼굴이 화끈거려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는 오구름에게 박바람이 먼저 손을 내밀었음. 오구름은... 그 손을 잡으면서도 심장이 터질듯이 뛰어서, 혹시 맞잡은 손을 통해 이 심장소리가 박바람에게 전달되면 어쩌지 걱정하며 교실로 돌아왔지.
그날 오구름은 오후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학교에서 집에 돌아왔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넋이 나가있었음. 박바람이, 오메가 페로몬만 맡으면 심한 울렁증 증세를 보이는 그 박바람이, 내 오메가 페로몬을 맡고서 아무렇지도 않다니... 혹시 이거... 그린 라이트? 박바람과 내가 운명의 짝꿍이라거나? 앞으로는 더이상 박바람 앞에서 페로몬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걸까? 별의 별 생각을 하던 오구름은 조금은, 아니 아주 많이 설레는 마음을 안고 잠이 들었지. 내일 학교에 가서 다시 물어보자. 혹시 이 모든게 내 꿈이었을지도 모르잖아?
그런데... 다음날 학교에 가니, 박바람이 등교를 하지 않은 것이었음... 중학생 때부터 단 한번도, 부모님이 돌아가셨던 날을 제외하고는 한번도 이유 없이 결석을 한 적이 없는 박바람인데... 심지어 박바람에게서 특별한 전화나 톡이 온 것도 없었음. 오구름은 박바람이 결석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그 반 앞을 서성이며 서 있다가 다른 친구에게 물었음. 박바람이 왜 결석했는지 아느냐고. 그랬더니 그 친구는 "담임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걔가 몸이 안 좋아서 오늘은 학교에 못 나오겠다고 했다더라." 하는 게 아니겠음? 그 소리에 오구름은 머리를 얻어맞은 듯 했지.
설마... 어제 내 오메가 페로몬을 맡아서, 그래서 혹시 울렁증이 더 심해진 걸까? 학교에 나오지 못할 정도로 몸이 안 좋아진 거야? 갑작스레 걱정이 된 오구름은 자기 반에 돌아오자마자 곧장 박바람에게 톡을 남겼음. 몸이 왜 안 좋으냐, 혹시 어제 일때문에 그런 거냐고... 아무리 몸이 안 좋아도 톡 정도는 확인하고 답장은 해 주겠지 기대했던 오구름은, 점심 시간까지도 박바람이 답장은커녕 톡 내용을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음.
어떡하지. 얘 진짜 많이 아픈가봐... 오구름은 영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톡 풍선 옆의 1을 초조하게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음. 역시 어제 괜히 그런 짓을 해서... 뭐가 문제가 없어. 지금 그 어느때보다도 심각한 상황이 되어버렸는데. 오구름은 도대체 박바람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가늠조차 되질 않아서, 오후 시간 내내 다리를 달달 떨며 불안해 하다가, 하교 종이 울리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음. 그리고 학교를 나서며 운전 기사에게 연락부터 했지. 오늘은 친구랑 약속이 있어서 집에 바로 안 갈거라고.
오구름은 학교 문을 나서자마자 바로 근처의 약국부터 들렀음. 그리고 거기서 페로몬과 관련된 약을 닥치는 대로 샀지. 페로몬 억제제부터 시작해서 안정제, 울렁증 해소제, 거기에 각종 비상약을 잔뜩 산 오구름은 택시를 잡아 타고 박바람네 집으로 향했음. 그때까지도 답장이 없는 박바람과의 톡방을 걱정스레 바라보며...
"박바람, 나야! 오구름!!" 오구름은 박바람네 집 앞에서 초인종을 다섯번이나 눌렀지만, 안에서 어떠한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음... 어떡하지, 얘 안에서 쓰러졌나봐...!! 그 생각이 들자 등골이 오싹해진 오구름은 허둥대며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눌러 문을 열었음. 그리고 집 안으로 들어오니...
"박바람...??" 불이 다 꺼진 집안은 온통 어둡고 서늘하기까지 한데, 사람 소리라고는 하나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아... 오구름은 저도 모르게 긴장해서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조심스레 박바람의 방 앞까지 발을 디뎠음...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해서, 이제는 귓가에 온통 쿵쾅대는 소리가 가득해질 즈음 오구름은 박바람의 방 앞에 도착했고... 조심스레 방 문을 두어번 두드렸지. "야, 나야... 너 안에 있는 거... 맞아?"
하지만 방 안에서 박바람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 않은데... 오구름은 터질듯이 뛰는 가슴을 안고 숨까지 삼킨 채 방 문에 귀를 가져다 댔음. 그리고... 그리고...
문 너머에서 얕게 "으으윽..." 하는 신음소리가 들리는 걸 포착했지. 그 소리를 듣자마자 화들짝 놀란 오구름은 당장 방 문을 열어제꼈음. "박바람!!!" 방 문을 확 열자 눈앞에 가득한 건 아까보다도 더욱 어둑해진 사방이어서 쉽게 박바람을 알아볼 수 없었던 오구름은 잠시 눈을 꾹 감았다가, 곧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자 침대 위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형체를 발견했지. 오구름은 곧장 그에게 다가가려고 했는데.
"오, 지마... 오구름..." 침대 위에서 몸을 한껏 웅크린 박바람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겨우 오구름을 불렀지. 그런데 다가오지 말라고? 오구름은 그 말을 듣고 잠시 멈칫했으나, 곧 박바람이 꽤나 고통스레 짧은 신음을 내뱉자 얼른 다시 그에게 다가갔음. "이, 이게 무슨 일이야? 너 왜 이래!" 박바람이 얇은 티셔츠가 축축하게 젖을 정도로 땀을 잔뜩 흘리고 있는 데다가 손바닥에 닿은 것은 등일텐데도 뜨끈뜨끈하게 느껴질 정도로 열이 나는 걸 알아챈 오구름은 크게 당황하며 어쩔 줄을 몰랐음. 이, 이거 내 예상보다 상태가 더 안 좋은 거 아니야? 당장 구급차부터 불러야 할 거 같은데...!! 오구름은 손에 든 폰으로 당장 119에 신고부터 하려고 그랬지.
"오지, 말라고..., 했잖아...!" 오구름의 손이 등에 닿은 것을 안 박바람이 전신을 크게 부르르 떠는 듯 하더니, 갑자기 더욱 거친 숨을 몰아쉬며 오구름의 손을 내쳐버렸음. "뭐, 뭐야, 왜 이래!" 박바람의 돌발 행동에 너무 놀란 오구름은 크게 비틀거리며 넘어질 뻔 했는데, 그 짧은 찰나에, 박바람이 오구름의 팔을 낚아챘고, 그대로 둘은 바닥에 우당탕 쓰러지고 말았지.
"아야야... 아프잖아...!!" 바닥에 등을 쾅 부딪힌 오구름은 잠시 눈살을 찌푸리며 고통스러워 했음. 등 전체가 알싸한 짧은 고통이 지나고 나서, 오구름은 무언가 묵직한 것이 자기를 바닥에 내리 누르고 있단 걸 깨달았음. 그건...
"하..." 오구름의 얼굴 바로 옆 바닥에 이마를 댄 박바람이 거칠고도 크게 심호흡을 했음. 그 소리가 어찌나 가깝게 들리던지, 등골이 오싹할 정도였는데... "야 너 갑자기 왜 그래... 일단 좀 비켜봐, 내가 구급차라도 부를테니까...!" 오구름은 겨우 팔을 뻗어 박바람의 등을 툭툭 치며 그에게 비키라는 신호를 보냈음. 그러나 박바람은 오구름의 말이 전혀 들리지 않는 듯 꿈쩍도 하지 않는데. "야, 좀 비켜보라니까? 어?" 오구름이 재차 말했지만 박바람은 여전히 물러날 생각이 없어보이고...
"들어오지 말라고... 했는데..., 하... 오구름... 으, 으윽..." 박바람은 이를 악 문듯이 잇새로 쥐어짜듯 목소리를 내어 말하는 듯 하더니, 여전히 등을 툭툭 치고 있는 오구름의 팔을 붙잡아 바닥에 내리 누르듯 고정했지. "뭐, 뭐야, 왜 이러는 거야?? 이거 놔, 아파!" 갑자기 박바람에게 두 팔을 붙잡힌 오구름은 생각지도 못하게 팔목을 내리누르는 강한 힘에 얼굴을 찌푸리며 팔을 빼내려고 몸을 비틀었음. 그런데 이번엔 박바람이 허벅지를 들어 한쪽 허리를 꾸우욱 누르며 오구름이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데. "야, 뭐야? 왜 이러는 거냐고!" 완전히 박바람에게 꽉 붙잡혀서 발버둥조차 치지 못하게 되자 너무 당황한 오구름이 외쳤음. 그 소리에 반응하듯 박바람은 바닥에 댔던 고개를 들어 오구름을 마주 보는데...
"??!" 박바람과 눈이 마주친 오구름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숨을 크게 삼켰음. 어둑어둑한 방 안에서도 박바람이 얼굴까지 열이 잔뜩 오른 것이 느껴질 정도였는데,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야, 너... 너..." 어둠 속에서도 희번득하게 빛나는 선명한 자줏빛 눈동자가 섬뜩하리만치 이채를 발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의 눈빛과도 다르지 않은 눈을 마주한 순간, 오구름은 뼛속까지 서늘하게 파고드는 한기에 저절로 숨이 턱 막혔음. 박바람과 친구로 지내면서 단 한번도 이런 눈빛을 마주한 적이 없었으니까.
"오구름..." 오구름이 자신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완전히 굳어버린 걸 바라보며 박바람은 천천히 그의 이름을 불렀음. 눈으로는 오구름의 얼굴을 훑어보며... 박바람의 시선이 마치 무언가를 탐색하듯 지긋하면서도, 무언가 진득하다는 것을 느낀 오구름은 등 뒤로 소름이 쫙 돋는 듯 했지. 그리고... 박바람이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거친 숨을 내쉴 때마다, 미친듯이 달콤하고도 매혹적인 향이 새어나오고 있다는 것도 알았음. 코끝에 닿는 진하고도 짙은 라일락 향기. 언젠가 맡은 적이 있는 박바람의 알파 페로몬.
"바, 박바람..." 히트 기간이어서 강력한 페로몬 억제제를 먹고 있기 때문에 타인의 페로몬에 영향을 받을 일은 없지만, 그럼에도 코앞에서 이렇게 진한 농도의 알파 페로몬을 접한 적이 한번도 없었던 오구름은 너무나 당황해서 머릿속이 엉망진창이 될 정도였음.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박바람이 왜, 왜 갑자기 페로몬을 내뿜으면서 나를 억누르고 있는 거지?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거야? 오구름이 혼란스러운 현 상황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이, 박바람은 여전히 섬뜩하게 빛나는 눈으로 오구름을 바라보고 있었지. 무엇보다도 저 눈빛이 무서워서, 오구름은 어떻게든 그 시선을 피하며 붙잡힌 팔을 빼내려고 애를 썼음. "이, 이거 놔... 너 왜 이래, 무섭다고...!!" 오구름이 끙끙대며 억지로 팔을 빼내려고 하자, 박바람은 커다란 손에 더욱 힘을 주어 오구름의 팔목을 붙잡은 채로 놓아주질 않는데...
"아파, 하지마...!" 박바람이 너무 강한 힘으로 팔목을 붙잡으니 진짜로 아플 정도라, 오구름은 눈물을 찔끔대며 소리쳤음... 하지만 박바람은 여전히 오구름의 말은 들은 체 만 체 하더니, 갑자기 고개를 틀어 가까이 다가오는데...! 순간적으로 박바람이 하려는 게 뭔지 알아챈 오구름은 얼른 고개를 다른 곳으로돌려버렸음. 덕분에 박바람은 오구름에게 입을 맞추지 못했지. 겨우 피하기는 했지만, 박바람이 저에게 키스하려고 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온통 혼란스럽던 머릿속이 완전히 정지해 버렸고, 아까부터 요동치던 심장이 이제는 가슴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격동하는 그 순간에... 너무나도 뜨거운 무언가가 목덜미에 닿아서, 오구름은 그야말로 전신을 파드득 떨었음. 목덜미에 닿은 건 박바람의 입술이었으니까.
"야, 그, 그만... 그만해..." 목덜미에 닿는 입술에 열기가 가득해서, 닿는 자리마다 불타는 듯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 같다고 느끼며 오구름은 목소리를 쥐어 짜냈음... 그러나 박바람은 아랑곳 않고 오구름의 목덜미를 따라 입을 맞추며 귓가에 닿을만큼 뜨거운 숨결을 내뱉었지. 지독하게 달콤하고 진한 라일락 향기를 내뿜으며. 코끝에 닿는 페로몬이 비정상적으로 달아서, 억제제 효과가 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순간적으로 눈앞이 아찔하게 흩어지는 환각을 본 오구름은 숨을 크게 삼켰음. 하지만 들이마신 숨에도 섞인 알파의 페로몬이 전신에 녹아들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힘이 쭉 빠지고 나른하게 풀려버리는데...
"... 오구름..." 어느새 목과 쇄골이 이어지는 부분까지 내려간 박바람이 뜨겁고도 미끈한 혀를 내밀어 그 부근을 살짝 핥아올렸음. "읏, 하... 아..." 혀끝이 닿은 자리에 진한 여운이 남아서, 오구름은 짧은 신음을 내뱉으며 온몸을 부르르 떨었음. 발끝까지 전해지는 짜릿한 감각에 오구름은 본능적으로 느꼈지. 박바람이 그를 원하고 있음을.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정신이 녹진하게 녹아내리는 듯 해서, 오구름은 어쩔 줄 모르겠으면서도 동시에 뭘 해야 하는지 알았음. 이대로 박바람에게 모든 걸 맡기면 되잖아? 눈앞의 알파가 나를 원하고 있어. 저항은 더 이상 의미 없는 짓이야... 흐늘하게 풀린 시야에 박바람의 얼굴이 들어왔고, 어떤 열망이 선연한 자줏빛 눈동자가 뇌내까지 파고드는 듯한 짜릿함에 몸을 움찔 떤 오구름에게...
손끝에 무언가 바스락거리는 것이 닿았지. 그건 오구름이 사온 약이 담긴 비닐봉투였고, 그 소리가 귓가에 닿는 순간 오구름은 정신이 번쩍 들었음. 이, 이건 박바람이 뭔가 문제가 생긴 거다...! 이대로는 우리 둘 다 큰일난다!! 상황의 급박함을 인지하자 갑자기 몸에 힘이 생겼고, 오구름은 "으으윽, 야이, 정, 신차려, 박바람...!!!!" 하며 다리로 박바람을 있는 힘껏 밀어냈음. 갑작스런 오구름의 반항에 박바람은 잠시 뒤로 밀리는 듯 했지. 그 사이 얼른 붙잡힌 팔을 억지로 빼낸 오구름은 허겁지겁 약이 든 봉투를 뒤지려고 했는데, 제정신이 아닌 박바람이 다시 팔목을 낚아채는 것이 더 빨랐음.
"아, 야, 야, 미친...!! 야!!" 다시 한 번 그에게 키스하려고 들이대는 박바람을 다른 팔꿈치로 막아내면서 오구름은 필사적으로 버둥거리다 발로 박바람의 복부를 차버렸음. 박바람이 잇새로 윽 소리를 내며 크게 멈칫했지. 팔목을 붙잡은 손에 힘이 풀리자 오구름은 미친듯이 약 봉투를 뒤졌고, 약사가 챙겨준 작은 주사제 형태의 급성 페로몬 억제제를 찾았음. 그리고 박바람이 다시 그를 붙잡으려 하기 전에, 약의 뚜껑을 따서 짧은 주삿바늘을 박바람의 팔뚝에 박아 넣었지!
박바람은 제 팔에 박힌 주사를, 거친 숨을 몰아쉬며 주사 안에 든 약을 끝까지 주입하는 오구름을 돌아보고는, "오, 구름..." 하는 말만 남기고 바닥에 털썩 쓰러졌음. 박바람이 쓰러지는 것을 얼른 받아 안은 오구름은 그에게 가득 차올랐던 열기가 빠르게 식으면서 식은 땀을 흘리는 것을 발견하고는 끙끙대며 박바람을 침대에 눕혀두었지.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폰을 주워 당장 119에 신고부터 했음... 119가 도착하기까지 오구름은 박바람의 침대 옆에 주저 앉아서, 두 손으로 제 얼굴을 감싸쥐었음... 머리가 터질듯이 어지럽고, 심장이 미친듯이 뛰고 있어서 진정을 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다행히 금방 도착한 119는 기절한 박바람의 상태를 살피고, 오구름에게 자초지종을 들은 뒤에 박바람을 구급차에 태워 근처 큰 병원으로 향했음. 물론 오구름도 같이 갔지.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박바람은 기절한 채로 페로몬 안정제를 투여받았음. 그리고 두 시간쯤 뒤에야 정신을 차렸음.
그때까지도 오구름은 박바람 곁에 앉아서 고개를 푹 숙인 채 깊은 한숨을 내쉬었음... 아까 전에 벌어진 일이 너무 혼란스러워서. 박바람의 페로몬이 폭주하는 것도 처음 봤지만, 무엇보다도... 박바람이 저에게 키스를 하려고 한 것이..., 아니, 저를 원한다는 강렬한 신호를 보냈다는 것이, 오구름에게는 여러 가지 의미로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오구름은 두 손으로 마른 세수를 하고, 깊은 잠에 빠진 박바람을 하염없이 바라보았음. 박바람이 정신을 차릴 때까지...
"으..." 짧은 신음과 함께 박바람이 눈을 뜨자, 오구름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음. "괜찮아??" 오구름이 묻자, 박바람은 응급실 천장에 달린 조명 때문에 눈이 부신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가, 곧 오구름을 알아보고 물었음. "여기는... 어디야...?"
"어디기는, 병원이지." 오구름이 한숨쉬듯 대답하자 박바람이 다시 물었음. "내가... 쓰러졌었어...?" 오구름은 쓰러진 게 문제가 아니라 엄청난 일이 있었다고 대답하려다가, 방금 정신을 차린 애한테 아무래도 그건 좀 심한 것 같다 싶어서 대충 "그래, 임마! 내가 너 쓰러진 거 보고 얼마나 놀랐는 줄 알아!" 하고 괜히 핀잔 주는 척을 했지. 그랬더니 박바람 표정이 대번 미안해지는데, 그 눈빛이 평소 보던 따스한 자줏빛이어서, 오구름은 내심 크게 안도했음. 다행이다. 진짜 다행이다.
박바람이 정신도 차렸고 하니 이제 집에 가도 되지 않나 싶어서 둘은 담당 의사가 오자마자 집에 가겠다고 했는데, 담당 의사는 아무래도 추이를 좀 지켜보는 게 좋겠다면서, 박바람을 집에 가지 못하게 했음. 덕분에 오구름은 혼자 응급실에서 걸어나왔지. 병원 앞에서 택시를 잡아 타고 집에 돌아가면서, 그리고 집에 도착해서 오늘은 과외도 멋대로 빼먹고 어딜 다녀오냐는 형의 잔소리를 들으면서, 엉망으로 흐트러진 옷을 벗고 샤워한 뒤에 침대에 걸터앉으면서도 오구름은 계속 박바람이 왜 그랬던 걸까 생각했음. 하지만 답이 나오지 않는 걸... 오구름은 복잡한 심경을 안고 고민하다 어느새 잠들고 말았지.
다음날 억지로 몸을 쓴 탓에 온몸이 쑤시는 상태로 오구름은 학교에 등교를 했음. 그리고 박바람이 아직 병원에서 퇴원하지 않아 또 결석한 걸 알고는, 학교가 끝나자마자 바로 병원으로 향했음. 박바람은 응급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겨져 있었는데, 1인실이라기에 가보니 무슨 격리실처럼 혼자 있는 병실인 것임. 이건 또 뭐야 싶어진 오구름이 그 앞을 기웃대자 지나가던 간호사가 거기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나 뭐라나. 왜 그러냐 물으니까, 마침 담당 의사가 와서는 하는 말이... "해당 환자는 지금 러트가 와서, 안정이 좀 필요한 상태입니다." 라고 하지 뭐야!
러트? 러트라고? 오구름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음. 오메가에게 히트라고 하는 주기가 있는 것처럼 알파에게 러트라는 특수한 주기가 있는 건 학교에서 이미 배웠지. 근데 박바람한테 특별히 러트 주기가 있었던가? 아리송한 표정을 짓는 오구름에게, 담당 의사는 혹시 저 환자와 무슨 관계냐고 물었음. 오구름은 의사에게 자신은 박바람의 친구고, 박바람은 지금 부모님을 비롯한 친지가 아무도 없기 때문에 자기가 박바람과 가장 가까운 사이라고 말했음. 아직 미성년자여서 보호자는 될 수 없는 관계라고... 그러니까 의사는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박바람의 현재 상태에 대해 말해주었지.
그러니까... 박바람이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오메가 페로몬 울렁증은 사실 오메가 페로몬에 그가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생긴 증상이고, 아마 사춘기가 지나고부터 점점 더 심해졌을 거라는 것. 원래라면 러트가 왔어야 맞는데 러트 대신에 오메가 페로몬 울렁증이 심해진 것도 다 예민하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라는 것. 그런데 최근에 그것을 자극하는 굉장히 강렬한 접촉이 있었고, 그것이 기폭제가 되어 이제껏 억눌려왔던 러트가 갑작스레 시작되었다는 것이었지.
의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오구름은 아 그래서 그런 일이 생겼던 거구나 하면서도...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지. 그러니까... 의사의 말대로 라면... 박바람이 갑자기 페로몬 폭주 현상, 즉 러트를 일으키게 된 건...
"우선 오늘까지는 병원에서 러트 양상을 좀 지켜보고, 내일은 페로몬 억제제와 안정제를 처방해 주겠습니다. 아마 러트 주기가 안정되기 전까지는 좀 불안정할 겁니다. 곁에서 잘 챙겨주세요." 의사는 그렇게 말하고 갔는데, 오메가더러 알파의 러트 주기를 챙겨주라는게, 말이 되는 소리야? 오구름은 헛웃음을 지었지.
다음날 박바람은 페로몬과 관련된 약을 한가득 받아서 집으로 돌아왔음. 박바람이 퇴원했다는 얘기를 듣고 오구름은 당장 박바람네 집으로 가려고 그랬더니, 박바람이 한사코 거절하지 뭐야. 자기가 지금 러트 기간인데 오메가인 오구름이랑 마주치면 큰일나는 거 아니냐고 말이지. 오구름은 속으로 '이미 한 번 큰일 치를뻔 했는데' 라고 생각했지만, 그냥 박바람의 의사를 존중해 주기로 했음. 대신 밤 늦게까지 박바람이랑 통화를 했지.
[미안해, 오구름... 본의 아니게 너한테 큰 폐를 끼쳤어.] 폰 너머로 박바람이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음. "아냐 뭐... 괜찮아." 오구름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사과를 받아주었지. 박바람은 오구름의 페로몬을 맡았던 그날 오후까지는 아무 일 없이 괜찮았는데, 저녁을 먹고 난 이후부터 갑자기 몸에 몸살 기운이 올라와서 한숨 자고 일어나면 좋아질 줄 알았다고, 그런데 자고 일어나니까 몸이 불타는 듯이 뜨겁고 페로몬 조절이 안 되어 머리도 어지럽고 속도 미식거려서 도저히 등교할 수가 없었다고 했음. 담임 선생님께 겨우 연락해 놓고는 폰도 들여다 볼 정신이 없었다고...
"근데 있잖아... 너, 병원 가기 직전에 있었던 일, 기억 나?" 이걸 물어볼까 말까 고민하던 오구름은 조심스레 뜸을 들이며 물었지. [음...] 박바람은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그닥 기억이 나진 않아... 그냥 네 목소리가 조금 들리고... 몸이 너무 뜨거웠다는 느낌밖에는...] 하고 대답했지. 그랬구나. 박바람의 대답을 듣고 오구름은 잠시 입술을 꾹 다물었음.
[... 혹시 내가 무슨 이상한 짓이라도 했어?] 박바람이 묻자 오구름은 얼른 "아, 아니! 너 그때 아주 몸살난 것처럼 전신이 불타는 거 같아서, 나는 네가 죽는 줄 알았거든. 그래서 그래." 하고 대답했음. [... 그랬구나. 네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정말 큰일났을지도 모르겠네.] 박바람이 차분히 말하며 다시 한 번 고맙다는 인사를 했지.
"그... 의사 선생님한테 러트가 시작된 이유는... 들었지?" 잠시 침묵이 지나간 뒤 오구름이 먼저 입을 열었음. [응. 들었어.] 박바람은 담백하게 대답했고. 오구름은 잠시 입맛을 다시며 뜸을 들였음. "그... 음... 저, 미안해. 그러니까... 그거 다 내 페로몬 때문인 거 같아서." 오구름은 머쓱하니 머리를 긁적이며 사과했지... "네가 괜히 내 페로몬을 맡아서 그렇게 된 거잖아. 그리고 또... 내가 널 오랫동안 속이기도 했고..." 오구름은 사과를 하면서도 괜히 민망한 기분이 들어 끄트머리에 허허 웃었음. 그랬더니...
[네가 미안해 할 일은 아냐. 내가 네 페로몬을 맡아보고 싶다고 했잖아.] 박바람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지. 오구름은 조금 놀랐음. "그치만 내 페로몬이 너한테 너무 자극적이었던 건 맞잖아. 의사 선생님이 그렇게 말했는데." 오구름이 말하자, 박바람이 즉시 대답했지. [아냐. 그건 그냥...]
"그건 그냥 뭐?" 박바람이 단호하게 내뱉은 말 치고는 끝을 흐리는 것이 영 이상해서 오구름이 물었음. [... 아무 것도 아냐. 음... 우리 통화 되게 오래했다. 이만 자는 게 좋겠어.] 박바람은 그에 대해 대답해 주지 않고 말을 돌렸지. 그게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오구름은 시계를 곁눈질 했음. 벌써 12시가 훌쩍 넘은 늦은 시간이었지. "어이구, 그러게. 이만 자야겠다. 내일은 학교 올 거지, 너?"
[물론이지. 내일 보자, 오구름. 잘 자.] 박바람이 다정한 목소리로 굿나잇 인사를 건넸음. 언제 들어도 가슴 한 구석이 따스해지는 목소리에 오구름은 살짝 미소지었고, "그래, 너도 잘 자, 박바람!" 하고 인사한 뒤에 전화를 끊었음.
아무래도 박바람에게 그때 있었던 일을 얘기하는 건 좀 무리겠다. 침대에 누운 오구름은 눈을 감으며 생각했음. 그치만 조금 설렜는데... 걔의 그런 눈빛은 처음 봐서... 짜릿했던 거 같기도 하고... 오구름은 그대로 잠들어버렸지.
그건 그냥... 내가 너를 좋아해서, 그랬던 것뿐이야. 어두운 천장을 바라보며 박바람은 생각했음. 온몸에 휘몰아치던 미친듯이 뜨거운 열기. 이성이 완전히 마비된 채로, 오로지 치고 올라오는 충동과 본능에 따라 몸을 움직이던 그 순간. 그리고 눈앞에 있던, 아주 오래 전부터 갈망하고 또 갈망해 왔던 누군가... 박바람은 눈을 꾸우욱 내리 감았지. 아직은 아냐. 아직은 안 돼.
전신에 페로몬 억제제의 효과가 돌아 끓어오르는 열기가 새어나가지는 않았지만, 깊이 침잠하여 욕망에 덧씌워지는 것을 느끼며 박바람도 잠이 들었음.
구상해서 쓰기 시작한 건 작년 9월인데
완성은 올 3월 말에 했네요.
중간 부분에 막혀서 마냥 묵혀두기만 했던...
원래는 좀 더 R15한 느낌으로 쓸 예정이었던 거 같은데... 아마도요?
간만에 긴 글 올렸습니다.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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