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 요거트크림과 해적 라일락이 나오는 연성을 봤는데... 너무 좋아서 뇌절하고 마는.... 그러나 원 트윗을 연성하신 분의 계정이 너무나 NSFW하여 차마 알티는 하지 못하고ㅋㅋㅠㅠㅠㅠ 여튼 설정 자체는 저의 오리지널 아이디어가 아님을 밝힙니다ㅋㅋㅠㅠㅠㅠ
스토리는 제가 날조해서 지어내는 거 맞아요 헤헤...
바다를 누비는 인어 일족의 막내인 요거트크림... 워낙 호기심도 많고 자유로운 영혼이어서 온 바다 이곳저곳을 누비며 다님ㅋㅋㅋ 인간들에게도 관심이 많고... 인어 동료와 가족들은 인간은 위험한 존재라며 가까이 다가가지 말고 엮이지도 말라고 충고하는데, 제멋대로에 막무가내인 요거트가 말을 들을 리가 없지ㅋㅋㅋ 인간의 배에 다가가 보기도 하고, 인간들이 사는 항구 도시에도 거의 모습을 들키기 일보 직전까지 가본 적이 있음ㅋㅋㅋ 물론 운 좋게도 아직 한번도 인간들에게 정체를 들킨 적은 없다만...
그러던 어느날, 요거트는 바다 한 가운데에 있는 커다란 배를 발견했는데... 이 바다에서 자주 보았던 군함이나 상선, 고기잡이 배 같은 느낌은 아니었음. 처음보는 깃발이 달려 있었거든. 검은 바탕에 해골 모양이 그려진... 궁금증이 생긴 요거트는 배에 가까이 다가가서 주변을 빙빙 돌며 맴돎ㅋㅋㅋ 커다랗고 오래된 배에는 인간이 꽤 많이 타고 있었고, 다들 왁자지껄하게 웃고 떠들며 먹고 미시고 있었단 말이지. 요거트는 배 가까이에서 인간들이 먹는 음식은 무슨 맛일까 궁금해하며 선상을 올려다보고 있었지.
그러다 누군가가 배의 난간 쪽으로 나오기에 얼른 수면 아래로 몸을 숨긴 요거트는, 난간에 몸을 기대고 저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는 사람을 유심히 살펴보았지. 뱃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까만 피부에 짙은 보라색 머리, 선명한 자줏빛 눈동자를 가진 그 남자는 요거트가 이제까지 봤던 인간들 중에 가장 아름답고 잘생긴 사람이었음; 그는 한 손에 술잔을 들고 가볍게 홀짝이며 바다 너머를 바라보는데, 다른 특별한 행동도 하지 않고 그것만 반복할 뿐인데도 어찌나 잘생겼는지 도저히 시선을 뗄 수가 없는 것임; 요거트는 그를 좀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은 욕심에 저도 모르게 물 밖으로 몸을 내밀고 배 근처로 좀 더 가까이 다가갔지.
어쩜 저렇게 아름답고 잘생긴 존재가 있을 수 있을까? 물론 요거트 역시 인어 일족 중에서도 특출나게 빼어난 외모를 가진 것으로 칭송을 받아오긴 했지만, 저 인간은 자기가 가진 아름다움과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잖아? 한참동안 넋을 잃고 그를 올려다보던 요거트는, 그가 몸을 돌려 다시 배 안으로 사라질 때 즈음에 다시 수면 아래로 들어갔지.
그리고는 날마다 그 배 주변을 맴돌며 그가 다시 배의 난간쪽에 몸을 내밀기를 오매불망 기다림ㅋㅋㅋ 커다란 배는 딱히 정해진 곳 없이 계속 바다 위를 떠도는 것 같았는데, 요거트도 그 배를 따라 다녔지. 그는 배의 난간 쪽으로 자주 오는 사람은 아니었다만, 그래도 하루에 한번쯤은 꼭 같은 자리에 와서 수평선 너머를 한참 바라보다 들어가곤 했단 말이지. 그때마다 요거트는 수면 위로 몸을 쭉 내밀고, 최대한 그의 얼굴을 자세히 보고 싶어서 안간힘을 썼음. 그러다 누군가가 다가오면 얼른 물 아래로 몸을 숨기고 말이지ㅋㅋㅋ
그러기를 며칠... 그날은 배 위가 유난히 분주해 보였고, 빠르게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음. 당연히 요거트도 그 배를 따라갔지. 대체 어디로 가려는 걸까? 배의 행선지가 궁금해질 무렵, 배는 갑자기 바다 한 가운데에서 정박했고... 이윽고 수면 위로 펑, 펑 하며 화약이 터지는 소리와 요란한 고함소리, 날카로운 것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고, 위에서 무언가 풍덩풍덩 바다로 떨어지는 거야;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요거트는 물 밖으로 상체를 내밀었고, 이제껏 쫓아온 배가 다른 배와 딱 붙어서는, 그 위에서 인간들이 서로 고함치며 싸우는 모습을 봤지. 인간들이 배 위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모습은 처음 보는 요거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숨을 죽인채 그 모습을 지켜보는데... 거기에 예의 그 남자도 같이 섞여있잖아!
그 남자도 다른 인간들이랑 싸우고 있는데... 손에 처음보는 둥글고 날카로운 무기를 든 채로 저에게 달려드는 누군가를 베어 배 아래로 떨어뜨렸지. 풍덩! 소리와 함떼 배에서 떨어진 사람 붉은 피를 흘리며 바다 아래로 가라앉고... 저러다 저 남자도 다쳐서 바다에 떨어지면 어쩌지. 요거트는 노심초사하며 계속해서 그의 움직임을 주시했지. 다행히 그는 전투에 무척 능한 사람이었는지, 아슬아슬하긴 해도 달려드는 적들을 물리쳐냈음.
그러다 그가 던진 무기 한짝이 바다에 떨어지는데... 요거트는 바다에 떨어져 천천히 가라앉는 그 무기를 얼른 쫓아가서 낚아챘단 말이야. 그건 그리 무겁지 않은 둥글고 날카로운 무기였는데, 어떻게 쓰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남자의 물건이니까 요거트는 그걸 잘 가지고 있기로 했지.
요거트가 무기 한짝을 주워서 다시 수면으로 올라왔을 때는 전투가 끝난 것 같았음. 배 위는 여전히 소란스러웠지만, 칼날이 부딪히고 총을 쏘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거든. 승리를 외치는 함성 소리만 들리니까, 아 이제 전투가 끝났나보다, 저 남자의 배가 승리한 거야! 싶은 요거트는 손에 무기를 꼭 쥔 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한참 동안 배 주위를 맴돌았지.
그날 밤에 그 배 위에서는 승리를 축하하는 파티가 열리는 듯 했음. 늦은 시간까지 배 위에 불을 환히 밝혀두고, 다들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술을 마시고 음식을 먹어댔거든. 그 중엔 역시 그 남자도 같이 섞여서 동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듯 해서, 요거트도 괜히 기분이 좋아서 수면 위로 한번 펄쩍 뛰어올라 보았지. 다들 근처에 돌고래가 있는 거 아니냐고 우루루 난간으로 몰려와 구경하러 나왔는데, 요거트는 아뿔싸 싶어 얼른 물 아래로 몸을 숨겨버림ㅋㅋㅋ;;
난간으로 몰려온 사람들이 바다가 너무 어두워서 아무것도 안 보인다며 투덜거리며 다시 들어가는데... 그 남자는 어째서인지 같이 돌아가지 않고 난간에 몸을 기대고 또다시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는 거야. 요거트도 살그머니 물 위로 얼굴을 내밀고 그를 올려다 보았지. 아, 잘생겼어. 손에 그가 놓친 무기를 꼭 쥔 요거트는, 그에게 이 무기를 돌려주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졌지 뭐야. 그래서 물 위에서 꼬리 지느러미를 흔들어 찰방찰방 소리를 내보았지. 헌데, 그는 요거트가 내는 소리는 듣지 못하고 동료가 부르는 소리를 먼저 들었고, 다시 배 안으로 들어가버렸어...
요거트는 실망하며 수면 아래로 내려갔지. 인간에게 정체를 드러내서 좋을 일은 하나도 없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그와는 한번쯤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단 말이야. 잃어버린 무기도 돌려주고... 요거트는 손에 무기를 꼭 쥔채 바다 저 아래로 내려가서, 인어 일족의 근거지로 돌아왔지.
요거트가 근거지로 돌아오자 플레인이 요거트에게 물었지. 요즘 대체 늦게까지 어딜 이렇게 싸돌아 다니느냐고, 손에 들고 있는 건 뭐냐고 말이야. 요거트는 몰라도 된다고 하고는 얼른 자기 은신처로 들어갔는데... 요즘 동생이 하는 행동이 영 수상하다고 생각한 플레인은 요거트를 굳이 따라왔고, 그를 추궁해서 뭘 하고 다니는지 기어이 캐내고 말았지.
요거트가 하는 이야기를 전부 들은 플레인은, 그들이 평범한 인간이 아닌 "해적"인 거 같다고 했지. "해적?" 요거트가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플레인이 그에게 설명을 해 주었음... 그들은 바다의 잔혹한 약탈자로, 낮에 본 전투는 아마 그들이 다른 배를 습격해서 사람을 죽이고 물건을 빼앗는 것이었을 거라고. 해적은 돈이 되는 거라면 무엇이든 갈취하고 나쁜 짓도 서슴없이 하는 놈들이니, 절대 그들에게 다가가지 말라고 말이야. 혹여라도 그들 눈에 띄게 되면 반드시 사로잡혀서 육지로 끌려가 온몸이 토막나게 될 거라고!
플레인의 이야기는 무척 섬뜩한 것이었지만, 요거트는 손에 예의 그 무기 한짝을 꼭 쥔 채 고개를 가로저었지. 그들이 해적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그 남자는 절대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닐 거라고 말이야. 플레인은 이미 요거트가 그놈에게 완전히 정신이 나갔구나 싶어서 혀를 쯧 차버렸지. 형 말을 안 들을거면 네 마음대로 하라고, 그러다 큰 일을 당해도 도와주지 않을 거라고. 요거트는 "나도 이제 어린애는 아니거든!!" 하고 화를 내면서 형을 쫓아내버렸어.
하지만 역시 찝찝한 이야기이긴 하잖아. 그래서 며칠간 요거트는 바다 위로 올라가지 않고 혼자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봤는데... 아무리 그래도 자꾸 그 남자가 생각나는걸... 견디다 못한 요거트는 며칠만에 근거지를 박차고 나와서 수면 위로 향했지. 온 바다를 헤매고 다니며 그 배를 다시 찾아냈고, 마침 난간에 몸을 기대고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는 그 남자를 발견했지.
그를 보자마자 불편했던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리면서... 요거트는 두 손을 꼭 모아잡고 한참동안 그 남자를 올려다보았어... 한번만이라도 좋으니까, 그와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요거트는 그가 다시 배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다가, 그가 들어가자 천천히 바다 아래로 내려갔지...
그러다 문득 좋은 생각이 난 거야. 인어의 모습으로 다가가면 분명 해적들이 자기를 사로잡으려고 하겠지? 하지만 인간 모습이 된다면?? 같은 인간 모습이라면 대화도 나눌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 요거트는 눈을 반짝이며 일족의 근거지로 돌아왔지. 그리고는 형을 찾았어. 형은 이 바다에서 일어나는 일은 무엇이든 다 알고 있으니까, 어쩌면 인어가 인간이 되는 법도 알고 있지 않을까 해서.
요거트가 인간이 되고 싶다는 말을 꺼내자마자 플레인은 단연 펄쩍 뛰었지. 인간에게 마음을 뺏긴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인간이 되고 싶다는 헛소리까지 하다니! 플레인은 그런 방법 따위는 알지 못한다면서, 다시는 그놈을 보러 가지 말라며 수하들을 시켜서 요거트를 제 은신처에 가둬버렸어. 아니 말만 했을뿐인데 가두기까지 하는 건 너무한 거 아니야!? 요거트는 화를 내며 꺼내달라고 꽥꽥 거렸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지. 요거트는 부루퉁하니 단단한 산호로 만든 창살을 노려보다가... 문득 남자의 무기가 매우 날카로웠던 걸 떠올리고는, 그걸로 창살을 잘라서 탈출해버렸어.
여기에 계속 있다가는 도망친 걸 형한테 들켜버리겠지? 다시 붙잡히면 형은 이제 돌을 가져다가 입구를 막아버릴지도 몰라. 요거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르게 헤엄쳐서 일족의 근거지를 벗어났고... 그날 밤이 될때까지 돌아가지 않고 너른 바다를 여기저기 헤매고 다녔지. 그러다 바다에 빛 한줄기 들어오지 않고 짙은 어둠이 가득해 졌을때... 저 너머에서 수상한 붉고 푸른빛이 일렁이는 동굴이 있는 걸 발견했지 뭐야? 호기심이 가득한 요거트는 당연히 그쪽으로 다가갔지.
커다란 절벽 아래의 동굴은 꽤 깊은 곳이었는데... 안으로 들어갈수록 붉고 푸른빛이 점점 강해져가고 알 수 없는 불길한 기운이 흘러나와... 이윽고 동굴의 가장 깊은 곳에 도달한 요거트는, 그 안에 시커멓고 커다란 여덟 개의 다리가 달린... 인어를 발견했지. 그 인어는 손 안에 붉고 푸른 빛이 나는 무언가를 쥐고서는, 요거트가 온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이리 나와보라고 했어. 요거트는 화들짝 놀라 쭈뼛거리며 그 인어에게 다가갔지.
그 인어는 아주 오래전에 부정한 주술을 저질러 일족에서 쫓겨난 주술사 인어였어. 그러나 요거트는 그에 대해 알지 못했지. 주술사는 수상하게 웃으며, 요거트에게 바라는 것이 있어 여기까지 온 것 아니냐, 원하는 게 무엇이냐 물었지. 요거트는 내가 원하는 게 있는 걸 어떻게 알았지 싶어, 눈을 반짝이며 자기 소원을 죄다 털어놓았음. 인간이 되어서 그 남자를 만나고 싶다고!
주술사는 그쯤이야 어려운 일이 아니라며, 돌을 파내어 만든 찬장에서 진한 보랏빛이었다가, 흔들면 연보랏빛으로 빛나는 수상한 약이 든 유리병을 꺼냈지. 요거트는 얼른 그쪽으로 손을 뻗었는데, 주술사는 이걸 쉽게 내 줄 수는 없다고, 대가를 주어야 가능하다고 했지. 그런데 요거트는 지금 가지고 있는게 없잖아. 손에 든 건 남자의 무기뿐인데... 이걸 넘겨줄 수는 없으니, 요거트는 외상은 안 되겠냐고 했는데, 주술사는 그럼 목소리를 내놓으라지 뭐야. 목소리? 요거트는 고개를 갸웃하고는, 그러겠다고 했어.
주술사는 요거트의 목에 손을 가져갔고, 잠시 밝은 빛이 반짝이는 것 같더니... 아, 아... 정말로 목소리가 안 나와! 요거트는 놀란 눈으로 제 목을 어루만졌고, 주술사는 약속대로 약병을 내밀었지. 그걸 마시면 지느러미가 인간의 다리로 변할 거라고. 단, 조건이 있다고 했지. 다리에 상처를 입으면 회복하지 못할 거라고. 바닷물에 담그면 상처가 낫겠지만, 그 자리엔 다시 인어의 비늘이 돋을 것이고, 같은 행위가 여러번 반복되면 다리는 사라지고 다시 지느러미로 변할 거라고 말이야.
근데 요거트에겐 그게 중요하지 않았지ㅋㅋㅋ 인간이 되는 약을 얻었잖아!! 신이 난 요거트는 주술사에게 입을 뻐끔거려 감사를 전하고, 곧장 수면 위로 올라갔지. 그리고는 당장 약을 마시려고... 그랬는데, 아무래도 인간이 되어버리면, 바다 한 가운데에서는 좀 힘들겠지? 그래서 요거트는 가끔 놀러가곤 했던 인간들의 도시- 요구르카의 항구로 향했지.
*
라일락이 탄 해적선은 잠시 요구르카에 머무르기로 했지. 전리품들을 팔아넘기고 필요한 물품을 사야하니까. 그리고 바다 위의 생활은 이래저래 지루하니, 며칠 육지에 머물러 환기를 할 필요가 있잖아. 요구르카 뒤쪽 항구에 배를 대자마자 동료들은 각기 흩어졌고, 라일락도 적당히 쉴만한 곳을 찾아 움직였지.
자주가는 선술집에 도착한 라일락은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의자에 몸을 편히 기대었지. 그리고 잠시 눈을 감았어. 고향과 육지의 냄새. 그런데... 어디선가 물기어린 바다의 냄새가 나. 라일락은 감았던 눈을 떴지. 헌데, 누군가가 그의 테이블 근처에 서 있는 거야. 검은 망토와 두건을 쓴 사람이... 라일락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 사람을 올려다 보았는데... 그 사람은 무언가 허둥거리는 듯 하더니 두건을 벗었지.
검은 두건 아래로 드러난 얼굴은 요구르카 뒷골목에서는 보기 드물게 굉장한 미인이었어. 피부는 다소 창백하긴 해도, 연보랏빛 머리와 푸른 눈동자와의 조합이 좋은... 그는 라일락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활짝 웃는데, 웃음 소리는 들리지 않아. 말을 못하는 사람인가? 라일락은 여전히 수상쩍은 눈초리로 그를 훑어보았지. 그는 부산스레 손을 움직이며 망토 안에서 뭔가 꺼내려고 했는데... 그 찰나에, 누군가가 "뭐야, 우리 술집에 이런 미인이 있었어?" 하며 어깨를 덥석 잡는 것임. 그바람에 깜짝 놀란 그사람은 몸을 움츠리며 자기 어깨를 잡은 사람을 쳐다봤지.
주변에 있는 사내들도 하나 둘 라일락이 있는 테이블 근처로 다가와 망토를 입은 그 사람을 쳐다보는데... 순식간에 시커먼 사내들에게 둘러싸인 그는 굉장히 당혹스러운 눈치였음. 편히 쉬고 싶었던 라일락도 저를 둘러싼 사내들이 불만스러웠는데, 더 불편한 건 그들이 그 사람에게 수작을 부리기 시작했다는 거. 사내들은 멋대로 그 사람의 머리에 손을 대거나 어깨를 어루만지면서, "귀한 몸인 거 같은데, 어쩌다 이런 곳까지 왔을까나?" "여기가 뭐 하는 덴줄 알아? 아가씨." "자진해서 여기까지 온 거면 이미 아는 모양인데?" 하며 추접스러운 말까지 하잖아. 그 사람은 어쩔 줄 몰라 쩔쩔대며 사내들의 손길을 치우려고 애쓰고.
그러다 기어이 두툼한 손이 그 사람의 허리를 꽉 끌어안고, 그가 입을 크게 벌리며 비명을 지르려고 하는 찰나에, 라일락이 허리춤에 차고 있던 차크람으로 테이블을 쾅 찍으며 자리에서 일어났지. 갑자기 큰 소리가 나자 다들 라일락을 돌아보았고, 라일락은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지. "적당히 하지 그래."
라일락을 아는 사내들은 슬그머니 뒤로 빠졌는데, 그를 모르는 이들은 코웃음을 쳤어. 거기 모인 이들에 비해 라일락은 덩치가 좀 작아보였거든. 그들이 비웃거나 말거나 라일락은 그 사람의 허리를 붙잡은 사내에게 다가가서, 힘으로 팔을 떼어놓고 그 사람을 빼냈지. 꽤 단단히 붙잡은 팔이었는데 힘으로 간단히 풀어버리니까 다소 당황한 사내가 어안이 벙벙해 하는 사이에, 라일락은 자기를 바라보는 그의 손을 잡고 술집을 나왔어. 여기 계속 있어봐야 싸움만 날거 같으니까 말이지.
그는 얌전히 라일락을 따라 술집 밖으로 나왔지. 술집에서 좀 떨어진 곳까지 그를 데리고 온 라일락은 뒤를 돌아보았어. 그랬더니... 완전히 선망이 가득한 눈으로 자기를 바라보는 그 사람과 눈이 마주침ㅋㅋㅋ;; 눈이 어찌나 반짝반짝 빛나는지, 부담스러울 정도였음ㅋㅋㅋ 라일락은 이건 또 뭐지 싶어 수상쩍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는데... 한참동안 라일락을 빤히 바라보던 그 사람이, 망토 안을 뒤적여 무언가 꺼내는 거야. 라일락의... 차크람이었지.
"...?" 라일락은 그가 내민 차크람을 얼결에 받아들었음. 손잡이를 잡으니 손끝에 감기는 감각이 딱 그의 물건이야. 헌데... 이걸 어디서 구한 거지? 이건 일전에 상선을 습격했을 때 전투를 하다가 잃어버렸는데. 라일락이 아주 수상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는데, 그는 활짝 웃으며 입을 뻐끔거리는 거야. 무언가 하려는 말이 있는 거 같은데...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아. 라일락은 고개를 갸웃거렸고... 그는 한참동안 입을 뻐끔거리다, 답답해서 화가 나는 모양인지 제 가슴을 두어번 탕탕 두드리고는, 실망하는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지 뭐야.
라일락은 이 당황스러운 상대에게 어찌 반응해야 하나 싶은데... 일단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다 주었으니 감사 인사를 하긴 해야겠지...? 어떻게 구한 건지 알 수 없지만... "... 고마워." 라일락이 짧게 감사 인사를 하자, 그가 숙였던 고개를 번쩍 들더니, 실망하던 표정은 금세 사라지고 다시 또 활짝 웃네. 그 얼굴을 마주보던 라일락은 무심코 참 아름답다고 생각해 버렸지.
뭐 어쨌든, 감사 인사를 했으니 이제 각자 갈길 가면 되지 않겠어? 라일락은 몸을 돌려 육지에 있는 동안에 머무는 여관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지. 그런데 뒤에서 따라오는 발소리가 들려. 라일락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어. 그 사람이, 망토 자락을 꾹 붙잡은 채로 라일락을 따라오고 있는 거야. "... 왜 따라 오는 거지?" 라일락은 그에게 수상한 눈길을 던지며 오지 말라고 가볍게 손짓했는데, 그 사람은 꿋꿋하게 계속 따라오는 거야ㅋㅋㅋ
여관 앞에서 라일락은 다시 걸음을 멈추었고, 똑같이 그 사람도 그자리에 섰지. 라일락은 눈살을 찌푸리며 "대체 왜 따라오는 거지? 갈 곳이 없나?" 하고 물었어. 그 사람은 또다시 입을 뻐끔거렸는데, 역시 아무 소리도 안 나잖아... 그러면서 조심스레 라일락에게 손을 뻗어 옷자락을 잡는데... 가느다랗고 창백한 손이 덜덜 떨고 있어. 그걸 보니 마냥 쫓아내기가 좀 뭐해진 라일락은, 그를 데리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지.
그닥 좋은 여관이 아니어서 방도 좁고, 어둡고, 쿰쿰한 곰팡이 냄새까지 나는데도 그 사람은 신기한 듯이 여기저기를 둘러보네. 라일락은 허리춤에 찬 차크람과, 아까 그 사람이 건네준 차크람을 같이 테이블에 내려두고 그를 돌아봤지. 한참동안 여기저기 둘러보던 그는 다시 라일락을 빤히 바라보는데, 라일락은 막상 그를 데려오긴 했으나... 아는 사람도 아닌데다가 이름조차 모르잖아? 라일락은 천천히 그에게 다가가서 느리게 물었지. "이름이 뭐지?"
그는 열심히 입술을 움직여 뭔가 말하려고 하는 거 같았어. 라일락은 인내심을 가지고 그와 똑같이 입술을 움직여 봤지. "요거트크림." 이윽고 라일락이 하나의 이름을 읊어내자, 그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거야. 요거트크림이라니, 이름 참 희한하군... 라일락은 그렇게 생각하고, 자기 이름도 밝혀주었어. "나는 라일락이야." 그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입술을 움직였어. "라일락" 이라고.
라일락은 그에게 또 물었지. "어디에서 왔지?" 그랬더니 그가 또 열심히 입술을 움직여 보는데... 이번에는 간단하지 않았어... 한 문장을 만드는데 너무 오래 걸렸지 뭐야. 라일락도 말을 못하는 사람이랑 이런 식으로 대화하는 건 처음이어서 입술 모양을 따라하는 게 어려웠거든. "... 요구르카 앞의 먼 바다에서 왔다고?" 그가 고개를 끄덕였어. 라일락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 바다에서 사람이 올 수 있나? 아, 바다 건너에서 왔다는 의미인가? 라일락은 대충 그렇게 여기기로 했지. 그밖에 궁금한 건 더 있었지만... 대화 방식 자체가 익숙하지 않다보니 힘들어서 그만 두기로 했어.
라일락은 침대에 걸터앉았지. 요거트는 머뭇거리며 라일락 주변에 서 있었어. 라일락은 요거트를 슥 훑어보고는, 망토를 계속 입고 있으면 답답할테니 그만 벗으라고 했어. 요거트는 라일락이 시키는 대로 망토를 묶은 끈을 풀어 벗었는데... 속에 아무 것도 안 입고 있잖아!? 망토가 훅 떨어지면서 맨몸이 그대로 드러나자 너무 놀란 라일락은 기겁하며 떨어진 망토를 주워서 다시 그를 가려주었지.
설마 아까 그 술집에서도 계속 이런 꼬라지였던 건가!! 라일락은 그 자리에서 끌고 나오기를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이마를 짚었음... 요거트는 어리둥절하니 고개를 갸웃거리기만 하고. 라일락은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내고, 자기가 가진 옷 중에 아무거나 내밀었어... 요거트는 흔쾌히 그걸 받아들긴 했지만... 입을 줄 모르는 거 같아... 라일락은 뭔가 일이 잘못 된거 같다고 생각하며 요거트에게 우선 옷을 입혀주었지...
라일락이 요구르카에 머무는 동안 요거트는 라일락을 열심히 따라다녔어ㅋㅋㅋ 라일락은 이... 이름만 알고 바다 건너에서 왔다는 인물을 계속 데리고 다녀도 좋은지 잘 모르겠지만, 딱히 악의가 있다거나 사고를 칠만한 사람은 아닌 거 같아서 그냥 내버려 뒀지. 요거트는 자기가 그토록 원하던 사람과 만난 것도 너무 기쁜데, 같이 다니면서 육지의 모습을 구경하고 다니니까 정말 행복한 거야! 하루하루가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들 투성이였지. 바다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니까!
그렇게 시간이 흘러흘러, 다시 라일락이 해적선에 승선할 날이 다가왔지. 동료 중 하나가 요구르카에서 무역선이 나갈 예정이라는 정보를 입수했거든. 라일락은 요거트에게 자기는 이제 일을 하러 간다고, 어울려 주는 건 여기까지라고 했는데... 요거트는 한사코 라일락을 따라가려는 눈치이지 뭐야. 해적일이 좋은 일도, 쉬운 일도 아니니 라일락은 요거트를 말렸으나... 사실상 라일락이 아니면 육지에서는 의지할 사람도, 갈 곳도 없는 요거트가 크게 실망하며 울먹거리니까, 라일락은 마음이 약해지고 말았어... 결국 라일락은 요거트를 데리고 배에 올랐지.
해적 동료들도 요거트에게 굉장한 관심을 보였는데, 라일락이 워낙 날을 세우고 말을 걸기는커녕 다가가지도 못하게 하다보니... 다들 라일락이 요구르카에서 애인을 만들어 왔구나 하는 정도로만 여기기로 했지ㅋㅋㅋ... 다시 바다로 돌아가는데, 인어가 아닌 인간의 모습으로, 배를 타고 나가는 건 처음인 요거트는 엄청나게 신이 났지! 물론 처음 이틀 간은 익숙하지 않은 흔들림에 멀미를 무지하게 해댔지만...
무역선보다 하루 정도 빠르게 길목에 도착한 해적선은 근처의 작은 섬에 배를 정박해 두고 밤을 보내기로 했어. 다들 배에서 내일의 일을 위해 힘내자며 작은 파티를 열었지. 거기에 요거트도 어울려서 웃으며 놀다가, 무심코 술잔을 떨어뜨렸는데... 그게 바닥에 부딪히며 박살나버렸고, 날카로운 유리조각에 요거트는 발을 찔리고 말았어. 당연히 피가 꽤 많이 났지. 라일락은 요거트의 발을 살펴 유리 조각을 빼주고, 지혈을 해 주려고 했는데 피가 쉬이 멎지 않네... 붕대를 가져다 요거트의 발을 감아준 라일락은 다소 걱정스러운 눈치로 요거트를 바라보았는데, 요거트는 입모양으로 괜찮다고 했어.
모두가 깊이 잠든 새벽에 요거트는 배에서 내려 해안가로 향했지. 달빛 어스름에 빛나는 바다가 무척 아름다워. 요거트는 잠시 검고 푸른 바다를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파도가 밀려드는 해안에 다가가 발에 감은 붕대를 풀었지. 그리고 바닷물에 상처 입은 발을 담갔어... 바닷물이 닿자 아물지 않던 상처가 순식간에 아무는 게 느껴졌는데... 문제는 그 자리에 정말로 인간의 살결이 아닌 인어의 비늘이 돋아난거야. 그제야 요거트는 주술사 인어가 했던 말이 진짜였구나 싶었지.
그치만 더는 다치치만 않으면 되니까. 요거트는 괜찮을거다, 앞으로 더 조심하자 다짐하고는, 발로 바닷물을 몇 번 저어보고 다시 배로 돌아갔지.
다음날은 날이 밝자마자 다들 비장하게 일을 할 준비를 마치고, 무역선이 드나드는 길목으로 배를 움직였지. 해적들이 다들 얼마나 긴장을 하고 있던지, 전투에 참여할 것이 아닌 요거트도 바짝 신경을 곤두세웠어. 이윽고 저 멀리 무역선이 보이고... 해적선은 빠르게 무역선으로 다가갔고, 펑! 하는 화약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치열한 난전이 시작됐지!
요거트는 전투를 하지 않으니 갑판 아래 선실에 꼭꼭 숨어있었는데, 아무래도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너무 궁금하잖아; 게다가 라일락이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나 싶어서, 기어이 갑판 위로 올라오고 만 요거트... 거기서 요거트는 라일락이 차크람을 쥐고 무역선의 호위 무사들과 싸우는 모습을 발견했지. 라일락은 매우 침착하게 무기를 휘둘러 호위 무사들을 베어내거나, 발로 차서 바다에 떨어뜨려버렸어. 요거트는 라일락이 다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몰래 숨어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호위 무사 중 하나가 요거트를 발견했고, 그를 향해 칼을 던졌지. 그걸 전혀 눈치채지 못한 요거트는 갑자기 배가 크게 흔들려서 얼결에 비틀거리다 칼을 피하기는 했다만, 그것이 다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까지 피하지는 못했어. 순간적으로 다리에 느껴지는 날카로운 통증에 요거트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어. 목소리가 나오지 않으니 비명도 흐느낌도 무엇도 나오지 않고 그저 헉헉대며 피가 나는 다리를 붙잡은 요거트에게, 칼을 던진 호위 무사가 다가왔지. 요거트는 공포에 물든 눈으로 다가오는 호위 무사를 쳐다보기만 했는데... 그 순간 호위 무사의 목덜미에 날카로운 차크람이 처박혔고, 그는 순식간에 목덜미에서 피를 뿜으며 쓰러졌지.
"괜찮아, 요거트크림!?" 라일락이 얼른 그의 상태를 살피며 물었지. 요거트는 애써 고개를 끄덕였지만... 다리에 난 상처 때문에 피가 많이 나고 있는게 라일락의 눈에 들어왔지. 화가 난 라일락은 요거트에게 다가오려는 호위 무사들을 죄다 썰어버렸어.
전투는 곧 끝이 났고, 무역선의 호위 무사들은 모두 죽었어. 상인들은 해적선 밑의 감옥에 가뒀지. 해적들은 승리를 자축하며 함성을 내질렀지. 그러나 라일락은 다친 요거트가 우선이라, 전투가 끝나자마자 바로 요거트에게 다가와 상처를 살폈어. 생각보다 깊게 스친 상처야... 라일락은 곧바로 붕대를 가져다 상처를 단단히 묶어주었지. 요거트는 라일락에게 미안하다고 했어. 라일락은 "위로 올라오지 말지 그랬어." 하고 쓴 소리를 했지만, 곧이어 "그래도 크게 다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야." 하고는 그를 꼭 안아주었지.
무역선에 워낙 많은 것들이 실려 있어 해적선으로 다 옮길 수 없었기에, 그들은 배를 통째로 끌고 근처의 작은 섬에 정박했지. 여기서 물건을 정리해다 다른 도시에 팔아넘기려고. 그리고 그날 밤에는 승리를 자축하는 큰 파티가 열렸어. 다들 승리에 취해 신나게 먹고 마시고, 보물을 꺼내다가 던지며 놀았지. 그 중에 요거트는 다리를 다쳐서 움직이지 못하니까 구석에 가만히 앉아있었고.
라일락은 동료들과 술을 마시다 요거트에게 다가왔어. 그리고 요거트에게 술잔을 내밀었지. 요거트는 라일락이 내미는 술잔을 받아 한 모금 마시고, 라일락에게 고맙다고 인사했어. 라일락은 말없이 요거트를 한번 바라보고, 술잔을 들어 술을 마셨지.
파티는 새벽까지 이어졌지만, 밤이 무르익으니 다들 술에 취해 하나둘 나가떨어졌어. 요거트는 그때까지 잠을 자지 않고 있다가, 사방이 코 고는 소리 빼고는 조용해 졌을 즈음에 살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지. 그리고 절뚝거리며 배에서 나왔어.
요거트는 느리게 바닷가로 향했지. 파도가 치는 바다로 다가가며 요거트는 라일락이 감아준 붕대를 풀었어. 확실히 상처는 하나도 아물지 않았어... 붕대가 풀어지자 상처에서 다시 피가 흐르기 시작했지. 요거트는 입술을 꾹 다문 채, 바다로 걸어들어갔어. 차가운 바닷물이 닿으며 상처가 아무는 감각이 느껴지는데... 그 순간 누군가가 요거트의 팔을 강하게 붙잡았지.
너무 놀란 요거트는 얼결에 팔을 뿌리치려 했는데, 그보다 요거트의 팔을 붙잡은 사람이 더 빨랐어. 그는 요거트를 끌어다 두 팔로 강하게 끌어안았어. 요거트는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대체 누구냐, 왜 이러는 거냐 외치다가... "죽으면 안돼, 요거트크림." 자기를 끌어안은 사람이 라일락인 걸 알았지.
라일락은 요거트 곁에 앉아 있다가 깜박 잠이 들었는데... 옆에서 요거트가 부스럭거리니까 문득 잠이 깼거든. 근데 정신을 차려보니 옆에 요거트가 없어. 주변을 돌아보니, 요거트가 배에서 내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 거야. 어딜 가려는 거지? 라일락은 조용히 요거트를 따라 배에서 내렸지.
배에서 내린 요거트는 다친 다리로 절뚝거리며 바다로 다가가는가 싶더니, 붕대를 풀어버리고 그대로 바다로 척척 걸어들어가잖아...? 저게 무슨 행위지, 상처가 낫지 않아 소금물이 닿으면 굉장히 쓰라릴텐데. 그런데... 무엇보다 바닷물이 허리까지 닿도록 깊이 들어간 요거트가 멈출 기세가 보이지 않아. 라일락은 설마 요거트가 이대로 바다에 들어가 죽기라도 할 셈인가 싶어 그를 붙잡은 거야.
라일락은 품에 안은 요거트를 단단히 붙잡았고, 요거트는 라일락의 품에 몸을 기댔지. 따뜻한 품에 몸을 기대니 라일락의 심장이 쿵쿵 뛰는게 느껴지는데... 요거트는 가만히 고개를 들어 라일락을 올려다 보았어. 라일락은 눈을 꾹 감은 채 요거트를 안은 팔에 더욱 힘을 주었지.
한참 뒤에 라일락은 요거트를 놓아주었고, 두 팔을 붙잡은 채 말했어. "위험하게 밤중에 바다에 들어가지 마." 하고... 요거트는 라일락을 바라보며 눈을 깜박이다가, 입을 벌려 하하 웃어버렸어. 물론 소리는 나지 않지만. 라일락은 요거트가 막 웃으니까 얼굴을 잔뜩 찌푸렸지. 근처에 아무도 없는데 이러다 파도에 휩쓸리면 어쩔 거냐고. 요거트는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고개를 휘휘 가로저었어. 그리고는 라일락을 이끌어 해안가로 걸어나왔지.
둘은 잠시 해안가에 마주보고 섰어. 요거트는 라일락이 자기를 구하러 바다까지 따라와 준 것이 고맙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계속 웃음짓고 있었지. 라일락은 요거트가 말없이 웃기만 하니까 조금 부아가 치밀어서, 요거트의 팔을 잡고 다시 끌어당겨 품에 안았어. 요거트는 라일락의 품에 안겨서 잠시 눈을 감았지...
한참 그러고 있다가 요거트는 슬쩍 눈을 떠서 상처가 있던 자리를 내려다 보았어... 아, 역시... 그 자리엔 인간의 살결이 아니라 인어의 비늘이 돋아있어. 크고 깊은 상처였던지라, 한쪽 허벅지 바깥쪽 전체가 인어의 비늘이 되어버렸지... 이걸 라일락이 알면 분명 이상하게 생각하겠지. 요거트는 애써 시선을 옮기고, 손으로 바짓자락을 붙잡아 최대한 상처가 보이지 않게 가렸지.
"... 그러고보니 붕대를 풀어버렸잖아. 상처는 괜찮아?" 라일락이 요거트를 내려다보며 물었고, 요거트는 소스라치게 놀라 얼른 고개를 끄덕였지. 라일락은 미심쩍은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겠다고 요거트를 붙잡았어. 요거트는 정말 괜찮다고 라일락을 밀어냈는데, 라일락은 기어이 요거트의 다리를 붙잡았고... 찢어진 바지 자락 사이로 돋은 매끄러운 비늘을 발견하고 말았지. 상처는 온데 간데 없이 말이야.
"... 이게... 뭐지? 요거트크림." 라일락이 손끝에 닿는 비늘에 놀라 요거트를 바라보며 물었어... 요거트는 입술을 꾹 깨문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 라일락은 혹시 그 칼에 독이라도 발라져 있었던 건가, 요거트가 독에 중독되어 이렇게 된 건가 싶어 무릎을 꿇고 요거트의 다리를 자세히 살폈어. 그런데 이건... 독이 아니야. 분명한 물고기의 비늘이지... 라일락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요거트를 올려다 보았지.
요거트는 가늘게 떨리는 손으로 제 팔을 붙잡고 라일락의 시선을 피했어. 라일락은 요거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매우 혼란스럽고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를 추궁할 수 없었지. 이런 이상한 현상이 나타난 데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그리고 그 이유는 뭔가 말하지 못할 사정인게 틀림 없다고... 라일락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서 요거트를 꾹 안아주었어.
약탈한 무역선을 정리한 뒤에 그들은 다른 항구 도시로 갔지. 거기서 머무르며 전리품들을 처리하고 육지 생활을 만끽한 뒤에 다시 해적질을 하려고 말이야. 라일락과 요거트는 여기에서도 함께 다녔어. 그동안 라일락은 요거트가 다리에 돋은 비늘에 대해 얘기해 주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지만, 요거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육지 생활을 즐기느라 신이 나기도 했고, 정체를 밝히면 라일락이 자기를 버릴까봐 두려웠거든. 그래서 일부러 라일락이 바라는 걸 외면한 거야.
하지만 언제까지고 숨길 수는 없는 노릇이지... 한참 즐거운 육지 생활을 즐기던 차에 요거트는 또 다리를 다쳤어. 이번에도 라일락이 응급처치를 해 주었지만, 상처를 치료하려면 바다에 들어가야만 해... 라일락은 조용히 요거트를 데리고 사람이 거의 없는 해안가로 갔지. 요거트는 가만히 라일락을 바라보기만 하고, 라일락은 요거트를 조용히 바닷가에 내려놓았어.
요거트가 다친 자리에 바닷물이 닿으니, 서서히 상처가 아물며 그 자리에 인어의 비늘이 돋아나... 그 모습을 라일락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지.
요거트는 더는 라일락에게 자신의 정체를 숨길 수 없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조용히 입술을 움직여 말했지. 나는 인어라고. 요거트의 입술 모양을 따라 소리를 내 본 라일락은 너무나 놀랐어. 인어라니? 인어의 존재는 소문으로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 존재를 직접 본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막연히 전설같은 거라고만 믿었던 라일락... 그런데 요거트가 자기는 인어라고 하잖아. 게다가 바닷물에 상처가 나아버리는 기이한 현상까지 목격했으니, 이 말을 믿을 수밖에...
라일락이 적잖이 당황한 눈치니까 요거트는 고개를 푹 숙여버렸지. 역시 정체를 밝히지 말았어야 했나 싶고... 이제 라일락이 자기를 버리고 떠나도 어쩔 수 없겠구나 싶은데... 라일락은 잠시 멈칫거렸지만, 이내 요거트를 끌어당겨 꼭 안아주었어. 그리고 말했지. "괜찮아. 네가 인어라도 나는 상관 없어."
아. 라일락의 말에 걱정하고 불안했던 마음이 탁 풀린 요거트는 눈물이 왈칵 솟아서, 라일락의 가슴팍에 그대로 얼굴을 묻었어. 그리고 한참동안 그 품에 안겨 울었지. 라일락은 소리 없이 흐느끼는 요거트를 꾹 끌어안고 가만히 등을 도닥여 주었어...
그들은 밤이 될 때까지 계속 해안가를 거닐다가, 지평선 너머로 검푸른 하늘이 펼쳐지고 은하수가 내릴 때에야 여관으로 돌아왔지. 라일락은 요거트와 마주보며 침대에 걸터앉았어. 요거트는 라일락의 시선을 살짝 피하며 손끝을 꼼질거렸지. 라일락은 가만히 요거트에게 손을 뻗어 요거트의 뺨이며 옆머리를 어루만지다가... 턱을 살짝 들어올려서 끌어당겼지. 요거트는 라일락이 이끄는대로 그에게 다가가며 눈을 감았고, 둘은 입을 맞추었어.
인간과 이렇게까지 해도 좋은 걸까? 요거트는 저를 탐하는 뜨거운 열기를 받아들이며 생각했지. 하지만... 이미 저질렀잖아. 더는 되돌릴 수 없어. 요거트는 다리에 돋은 매끄러운 비늘 위로 입을 맞추는 라일락을 바라보며 달뜬 숨을 토해냈지.
혼란스럽지만 그럼에도 행복한 시간이 지나갔지. 마치 꿈결같은.
그러다 요거트는, 얼굴에 닿는... 아니, 전신을 감싸는 묵직하고도 차가운 물의 감촉에 눈을 떴어. 사방이 탁하고 푸른 물이었어. 이게 뭐지?
깜짝 놀란 요거트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지. 물 속이었어. 왜 내가 물에 들어와 있는 거지? 요거트는 팔을 뻗었는데, 손끝에 단단하고 차가운 유리벽이 닿았어. 설마, 수조인건가? 요거트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다리를 내려다 보았지. 그러나 거기에 다리는 없었어. 매끄러운 비늘로 이어지는 지느러미가 있을뿐.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너무나 혼란스러운 요거트는 유리벽을 쾅쾅 쳤어. 어째서 자신이 다시 인어의 모습이 된 것인지, 왜 수조 안에 갇힌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어. 그러다 불현듯 어젯밤 일이 떠올랐지. 설마, 라일락이랑 함께 밤을 보내서? 그래서 주술이 풀려버린 거야? 아니면...
라일락이 배신한 걸까? 갑자기 닥쳐오는 패닉에 요거트는 두 손으로 머리를 붙잡았어. 라일락이 배신했다고? 인어여도 괜찮다고 했잖아, 나를 사랑한다고 했잖아! 머리가 터질듯이 아프고 눈물이 저절로 흘러나왔지. 바닷물 속에서 눈물은 진주가 되어 수조 바닥에 툭툭 떨어졌어. 그리고...
"이야, 진짜 장관이구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서 요거트는 고개를 번쩍 들었지. 해적 동료들의 목소리야. 그들은 수조의 유리벽 너머로 요거트를 바라보며 킬킬 웃었어. "인어의 눈물은 진주라더니, 진짜였구만? 대단한데." 그들은 요거트가 무슨 표정을 짓는지는 중요하지 않았고, 바닥에 떨어진 진주들에만 관심이 있었지. "이대로 계속 울게 만들면 진주 목걸이 하나는 뚝딱 만들어지겠는데?" 그들이 조롱하는 어투로 말하는 소리가 유리벽과 물을 거쳐 울렁이며 전해졌지.
요거트는 이를 악물었어. 라일락, 라일락은 어디있어? 이 배신자! 요거트가 주먹을 쥐고 유리벽을 쾅 내리치자, 해적들이 움찔하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지. "성깔 있는 녀석이구만? 이미 알고 있는 거긴 했지만." 그들은 큰 소리로 웃어 제끼며, 분노한 얼굴의 요거트 앞으로 얼굴을 들이대며 괴상한 표정을 지어보였지. "어디 더 해봐~ 그래봐야 그 수조에서 나올 수는 없을걸." 누군가가 킬킬대며 외쳤고, 다들 왁자하게 웃음을 터뜨렸지. 그리고...
그리고 그 뒤로, 요거트는 쓰러진 라일락을 발견했어. 라일락은 배의 갑판 위에 정신을 잃은 채 쓰러져 있었는데, 심하게 맞은 듯 보였지. 그 모습을 발견한 순간, 요거트는 그대로 숨을 삼키며 굳어버렸어. 라일락이... 배신한 게 아니었던 거야...!
정신이 번쩍 든 요거트는 어떻게든 라일락에게 다가가고 싶어 유리벽을 쾅쾅 내리치고, 수조 안을 바쁘게 돌아다녔어. 그러나 수조의 유리벽은 너무나 단단했고, 위로는 철창까지 둘러쳐져 있어 뛰어오를 수조차 없었어... 요거트가 이상한 반응을 보이자, 해적들은 낌새를 눈치챘는지 기절한 라일락을 끌고와 요거트에게 보여주었지. "너, 이자식 때문에 그렇구나?"
심하게 얻어맞은 채로 입가에 피를 흘린 채 기절한 라일락과 마주하게 된 요거트는 경악했지. 요거트는 유리벽을 주먹으로 때리면서 어떻게든 라일락을 깨워보려했어... 그러나 라일락은 완전히 기절해 버렸는지, 아무리 큰 소리를 내도 눈을 뜨지 않는 거야... 설마 죽은 건 아니겠지? 요거트는 눈물을 방울방울 흘리며 라일락을 부르짖었지만...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지.
"이자식 덕분에 네가 인어인 걸 알았다." 라일락의 머리채를 붙잡은 해적놈이 검은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지. "이자식이 네놈에게 조금만 덜 신경을 썼다면 우리가 네놈들 뒤를 밟을 생각도 하지 않았을 거야. 사랑에 빠진 놈은 정신머리가 없는 법이지. 우리가 미행하는 줄도 모르고, 너를 바다에 집어 넣었으니까 말이야!" 그 말인 즉, 전날 요거트가 다쳐서 치료를 하기 위해 바다에 들어간 걸... 이들은 미행해서 따라온 뒤에 전부 보고 있었다는 말인 거야...!
"인어는 뼛조각 하나까지도 가치가 있다지." 다른놈이 말했어. "살아있는 그 자체로도 굉장히 비싸지만 말이야. 눈물은 진주고, 살은 그 어떤 생선보다도 맛이 좋고, 심장은 영생의 영약이 되고, 뼈를 갈아 가루로 만들면 만병통치약이라고 말이야! 네놈이 우리 해적선에 탄 건 그야말로 행운이었어. 너와, 이자식에게 감사하지!" 너무나도 끔찍한 말에 요거트는 몸서리치며 그들을 노려보았어. 라일락은 죄가 없어. 이자들이야말로 쓰레기였던 거야! 요거트는 분노가 치밀어 올라 단단한 꼬리 지느러미로 유리벽을 후려쳤는데, 유리벽이 크게 흔들리기는 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갑자기 유리벽이 크게 흔들리니까 해적들은 잠시 놀랐다만, 유리가 깨지거나 하지 않으니 안심하며 큰 소리로 웃어제꼈지.
"그렇게 몸부림치지 마라. 너를 비싼 돈을 주고 살 분들 맘에 들어야하지 않겠냐. 우린 요구르카에 가서 너를 팔아넘길 거거든. 그동안 비늘 하나라도 상하면 안 되지." 선장이 킬킬대며 그렇게 말해놓고 요거트를 향해 징그러운 미소를 지었지. 요거트는 이를 부드득 갈며 주먹을 굳게 쥐었어... 그리고 그 순간.
선장 뒤쪽에서 억! 소리가 나며 수조의 유리벽으로 피가 튀었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선장도 요거트도 놀라 뒤쪽을 바라보았지. 거기엔 라일락이, 엉망진창인 얼굴로 해적 쓰레기들을 노려보며 차크람을 휘두르고 있었어! 선장은 다급한 목소리로 당장 저놈을 잡아서 바다에 처넣으라고 소리쳤는데, 그 찰나에 라일락의 차크람이 선장의 목에 박혀버렸지. 선장은 요거트가 갇힌 수조에 부딪히며 그대로 미끄러져 숨을 거두었어.
요거트는 수조 안에서 라일락이 필사적으로 싸우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어...! 라일락은 머리 끝까지 분노가 치솟아서 주체할 수 없는 얼굴로, 달려드는 해적들을 가차없이 베어버렸지. 라일락의 무서운 기세에 밀린 해적들은 그의 차크람에 베여 쓰러지거나, 허겁지겁 도망치거나,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나거나 하느라 바빴고...
하지만 해적들은 수가 많았어. 라일락은 혼자였지. 게다가 라일락은 심하게 얻어맞아서 부상을 입은 상황이라 움직임이 수월하지 않았어. 금세 라일락의 상태를 알아본 해적놈들은 세를 뒤집어 라일락을 위협했지. 라일락은 아슬아슬하게 그들의 공격을 피해가며 한두놈을 더 쓰러뜨렸지만... 찰나에 발을 헛디딘 라일락이 크게 비틀거리자, 누군가가 그에게 날카로운 단검을 들이댔지. 라일락은 거기에 가슴 한복판을 찔리고 말았어...
그 모든걸 지켜보던 요거트는 비명을 질렀어. 소리 없는 비명과 동시에 수조가 와장창 하고 박살이 났어. 라일락이 온 힘을 다해 던진 차크람이 수조의 모서리를 정확하게 강타했고, 물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수조가 무너져 내린 거야. 갑자기 수조가 무너지고 물이 쏟아지며 유리가 깨지는 난리 통에, 해적들은 혼비백산이 되었어. 수조가 박살나며 밖으로 나온 요거트는... 쓰러진 라일락을 끌어안고, 그대로 흘러나온 물을 타고 미끄러져 배 아래로 뛰어내렸지!
첨벙 소리와 함께 깊고 차가운 바닷물이 둘을 감쌌어... 요거트는 라일락을 품에 꽉 끌어안고, 미친듯이 헤엄쳐서 어딘지도 모르는 먼 곳으로 일단 도망쳤지. 한참을 헤엄쳐서 아무 것도 없는 망망대해 한 가운데에 도달했을 때, 요거트는 그제야 품에 안은 라일락을 돌아보았어...
라일락의 앞섶은 가슴에서 흘러나온 피로 흥건하고... 그는 창백한 얼굴로 눈을 감은 채 가늘게 숨을 쉬고 있었어... 이대로라면 라일락은 죽어버릴거야... 요거트는 라일락을 붙잡은 채, 죽지 말라고 입을 뻐끔거리며 사방을 둘러보았는데, 여기는 바다 한 가운데야. 상처 입은 인간을 치료할 수 있을만한 무언가는 전혀 없는 곳이었지. 망연자실한 요거트가 사방을 헤매는 동안에도 라일락은 점점 생명이 꺼져가고 있었어. 요거트는 눈물을 미친듯이 흘려가며 어떻게든 그를 붙잡아보려 애썼는데.
뒤에서 첨벙거리는 소리가 들렸지. 요거트는 재빨리 뒤를 돌아보았고, 거기엔 집을 박차고 나오느라 얼굴도 잊고 지낸 형- 플레인이 있었어. 그는 갑자기 망망대해 한 가운데에 나타난 동생을 보고 미친듯이 화를 낼 기세였다만, 요거트가 품에 안은 인간을 발견하고 멈칫했지. 그리고 그가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다는 것도. 플레인은 제 이마를 짝 소리가 나게 치고는, 요거트를 끌어다가 깊은 바다로 데려갔어. 물론, 라일락이 대충 숨은 쉴 수 있도록 주술을 걸어주고 말이야.
플레인은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요거트를 추궁했는데, 요거트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서 설명을 할 수가 없었어... 안 그래도 동생이 가출한 것에 대해 화가 단단히 나 있었던 플레인은, 요거트가 목소리도 안 나오는 것까지 알자 정말로 머리 끝까지 분노가 폭발했지. 하지만 요거트가 눈물을 흘려가며 제발 라일락을 살려달라고 빌고 있어서, 플레인은 이마에 힘줄이 솟도록 이를 악물었어. "그까짓 인간을 살려서 뭐에 써먹을 것이냐?" 고.
인어는 다치거나 공격당하지 않는 이상 죽지 않는 영생의 존재야. 하지만 인간은 수명이 다 하면 자연적으로 죽는 필멸자이지. 플레인이 보기에 인간은 수명도 짧은데 탐욕스럽기까지 해서 하찮은 존재거든. 그런데 동생이 그런 인간을 끌고 왔잖아. 그것도 다 죽어가는 꼴로. 플레인이 날카로운 눈으로 저를 쏘아보고 있는 걸 마주보며 요거트는 애원했지. 그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제발 살려달라고.
플레인은 동생의 입 모양과 눈빛으로 의도를 읽었어. "한심한 녀석." 그리고 혀를 쯧 차며 말했지. "네 심장을 찔러 나온 피를 그에게 먹여라" 라고. 요거트는 눈물어린 눈으로 형을 올려다 봤어. "네 심장에서 나온 피를 먹이면 그는 인어가 될 것이다. 그리고 너는, 영생의 삶을 잃어. 일족의 다른 이들과 다르게, 너와 그는 영생을 누리지 못하고 수명이 다 하면 죽게 될 것이다. 그래도 좋으냐?" 플레인이 덧붙인 말에 요거트는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어. ... 플레인은 요거트에게 날카로운 단검을 내밀었지.
요거트는 형이 내민 단검을 치켜들었고, 그걸로 자신의 심장을 찔렀어. 날카로운 칼날이 그대로 가슴을 파고들고, 그 고통은 어마어마했는데, 그래도 요거트는 이를 악물고 버텨냈어. 가슴에서 나온 피가 바닷물에 흩어져 갔지. 요거트는 이제 거의 숨이 다해가는 라일락에게 팔을 뻗어 그를 안아올리고, 제 가슴에 그의 입술을 가져다 대었어. 그가 피를 마실 수 있도록 말이야.
점점 몸이 나른해지고 눈앞이 흐려져 가... 죽음이란 이런 것일까? 요거트는 라일락을 붙잡고 있던 팔을 놓치면서, 그대로 바닥에 가라앉았지.
사방이 묵직한 물이야. 깊고 따뜻한 바다의 품이었지.
그리고 누군가가 저를 감싸안았어. 이 또한 익숙하고 따뜻한 품이야.
요거트는 느리게 눈을 떴어. 긴 머리카락이 물살을 따라 천천히 위아래로 흔들리고 있었지. 가슴이 아릿하게 아팠어. 단검으로 찌른 상처는 그럭저럭 아물긴 했지만 아직 내상이 남은 모양이지. 요거트는 멍하니 생각했어.
라일락, 라일락은 어떻게 되었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든 요거트는 몸을 크게 움찔하다가, 누군가가 저를 끌어안고 있는 걸 알았지. 까만 피부에, 짙은 보라색 머리. 그리고 선명한 자줏빛 눈동자...
그 아래로는 기다랗고 단단한 지느러미가 천천히 움직이며 물살을 타고 있고 말이야.
요거트는 라일락을 와락 껴안았어. 라일락 또한 요거트를 더욱 단단히 안아주었지. 눈물이 방울방울 진주가 되어 물살을 타고 바닥에 가라앉았지.
라일락은 정말 죽기 직전에 요거트의 피를 취해 인어가 되었고, 둘은 그렇게 요거트의 영생을 반씩 나눠가진 사이가 됐지. 인어로 변해버린 라일락은 처음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믿지 못하는 눈치였지만... 살아있잖아. 그것도 인어의 모습으로. 그러니 믿을 수밖에...
플레인은 이런 대형 사고를 친 요거트에게 미친듯이 화를 내고,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경위를 물었지. 그런데 요거트는 여전히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어. 그래서 라일락이 요거트의 입술을 따라 읽고 플레인에게 대신 설명했지... 요거트가 어떻게 인간이 되고자 결심했고, 어떤 과정을 거쳐 인간이 되었는지 라일락도 이때 처음 알았어. 너무나 위험한 선택을 한 거 아니냐고 라일락조차도 혀를 찼지.
일의 경위를 알게 된 플레인은 대노하며 수하들을 끌고 주술사 인어를 찾아갔어. 그리고 그에게서 요거트의 목소리를 되찾아왔지. 목소리가 담긴 작은 유리병을 받은 요거트는 그 안에 든 연보랏빛 액체를 마셨고... "아, 아..." 드디어 제대로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지!
"아아..." 소리가 나오는 제 목을 어루만지며 요거트는 울먹거리다가... "라일락..., 라일락!" 하고 라일락의 이름을 부르며 그를 와락 껴안았어. 드디어 연인의 이름을 소리내어 부를 수 있게 된 거야...! 라일락 또한 이제껏 한번도 듣지 못한 요거트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를 꼭 안아주었지.
둘은 육지보다도 넓은 바다를 누비며 살아가기로 했어. 육지 여행은 이제 충분한 거 같으니까 말이야. 너른 바다를 함께 누빌 평생의 동반자가 있으니, 이제는 바다도 충분히 재미있는 곳이 아니겠어?
2022.1116 카테고리 및 제목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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